정화조를 뒤져서 나온 유골 조각은 총 8개. 두상을 살펴보니 여성의 두상이었다. 무엇보다 허벅지 안쪽에 있는 넙다리뼈의 길이를 볼 때 시신의 키는 150cm가량의 작은 키와 체형으로 추정됐다.
유골의 성별은 밝혀졌으나 이것이 단순한 사고인지, 타인에 의한 범죄인지 추정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정화조에 실수로 발을 헛디뎠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 하지만 인근 동네 사람들은 “사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고 한다. 빌라에 주차 공간이 부족한 탓에 늘 철판을 정화조 위에 올려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철판은 성인 남성들도 힘겹게 들어 올릴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사건의 무게는 ‘단순 사고’보다는 범죄로 좁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골이 발견된 정화조의 철판이 빌라에 위치한 다른 정화조 철판보다 훨씬 작은 크기라는 점에 의혹이 집중됐다. 사건이 일어난 빌라 주변에는 총 9개의 정화조가 위치해 있었다. 이중 유골이 발견된 정화조 철판이 다른 정화조 철판의 반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시신을 버리기 위해 “좀 더 가벼운 철판을 들어 올린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경찰은 유골이 아무런 옷도 입고 있지 않았던 점에 주목했다. 정화조 일대를 찾아봐도 유골 외에 신발이나 옷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알몸으로 시신이 방치된 점을 비춰볼 때 전형적인 ‘시신 유기 범죄’의 법칙을 사건은 따라가고 있었다.
국과수의 감식 결과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국과수 측은 “시체는 약 3년에서 5년 정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두상에 드러난 이의 함몰 상태를 볼 때 고령일 가능성이 있다”라는 소견을 내놨다. 여성과 고령, 유골의 방치 기간 등 사건의 핵심 증거인 유골에 대한 정보가 퍼즐처럼 맞춰진 것이다.
경찰은 해당 기간 실종 신고 기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유골의 주인이 사건의 피해자라면 그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2008년에 실종된 손 아무개 씨(여·82)가 사건이 발생한 빌라 인근에 살았던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손 씨가 고령의 여성이라는 점, 사건 발생 지역 빌라에 살고 있다는 점은 유골의 주인이 손 씨라는 점을 강하게 방증하고 있었다.
경찰은 즉시 유가족과 주변 일대를 상대로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신을 빌라 정화조에 유기한 점에 비추어 누군가 이 지형을 잘 아는 이가 범인인 것으로 추측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국과수에서 ‘DNA 분석서’까지 나와 유골의 주인이 손 씨가 확실하다는 결론까지 나왔다. 손 씨의 이가 그대로 남아 있어 손 씨의 손녀딸과 DNA를 대조해 본 것이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인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나왔다. 놀랍게도 범인은 손 씨의 며느리인 김 아무개 씨(52)였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신고를 한 점이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유가족을 수사했다. 처음에는 김 씨가 범행을 일절 부인하다가 국과수에서 나온 DNA 의뢰서를 보여주니 압박을 느꼈는지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며 “남편은 타지에서 일하고 있어 아내의 범행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김 씨가 손 씨를 살해한 전말은 이랬다. 김 씨는 지난 2006년부터 남편과 시어머니 손 씨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당시 김 씨는 남편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 씨가 집에 들어온 이후 손 씨가 통 밥을 먹지 않았다”라는 얘기가 있기도 했다. 둘 사이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년 후인 2008년부터 손 씨에게 치매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에 김 씨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윽고 2008년 7월 말 사건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밤 11시쯤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김 씨는 손 씨가 대소변으로 집안을 어지럽힌 모습을 보게 됐다고 한다. 이후 김 씨는 손 씨의 대소변을 치우는데 이때 손 씨가 김 씨를 향해 욕설을 했다는 것. 김 씨는 “방안에 본 대소변을 청소하는데 갑자기 손 씨가 욕설을 했다. 이에 홧김에 손 씨를 밀치게 됐다”고 진술했다.
김 씨에게 밀쳐진 손 씨는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곧바로 숨졌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시어머니의 시신을 본 김 씨는 이를 곧바로 신고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손 씨를 그대로 두 팔로 안아 빌라 인근 정화조에 뚜껑을 열고 손 씨를 유기한 것이다. 손 씨의 시신을 유기한 정화조는 김 씨의 집에서 약 40m가량 떨어진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무게가 덜 나가는 정화조의 철판을 고른 것도 빌라 인근을 잘 아는 김 씨의 계산이었던 셈이다.
치매가 있었던 손 씨는 집안에서 거의 옷을 입지 않은 채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손 씨가 유기될 당시 알몸이었던 정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를 유기한 이후 김 씨는 “외출하고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사라졌다, 동네사람들 말로는 보따리를 싸서 나갔다더라”라며 사건을 은폐했다. 이후 손 씨의 딸이 손 씨를 실종 신고했고, 유가족은 한동안 찾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손 씨의 행방을 알 길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26일 김 씨를 존속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김 씨를 구속했다. 김 씨는 “당시에 신고했어야 했는데 하루가 지옥 같았다. 이제 후련하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고 전해진다. 손 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5년 만에 발견된 유골로 밝혀진 셈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