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청와대 행정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과정에서부터 시작,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로 본격화된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 징후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각종 지표로 보나, 전문가들의 반응으로 보나 박 대통령이 위기를 맞은 것 같은데 청와대가 어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행정관의 말 속에는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만 다녀오면 여론이 좋아졌다는 이른바 ‘순방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청와대 내부 인사들 역시 현재의 난국을 넘어설 만한 마땅한 해법을 못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진영 장관(왼쪽)의 사퇴 파동이 복지공약 후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18일 박근혜 대선후보가 ‘창조경제론’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렇다 보니 현재의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도 청와대 인사들은 “민생과 경제를 챙기고 세일즈 외교에 전념할 것”이라는 답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올 후반기에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것처럼 기업 투자를 막고 있는 규제를 없애는 등 경제 활성화에 매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겉으로는 이처럼 ‘포커페이스’를 보이고 있지만 이미 박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부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들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양건 전 감사원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와 진영 전 장관의 사퇴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겉으로는 진 전 장관의 사퇴 역시 또 하나의 인사 파동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진 전 장관의 사퇴를 통해 박 대통령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라는 이미지에 결정적 흠집이 나게 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던 한 정치학 교수는 “진 전 장관 사퇴는 대통령의 최측근이 등을 돌리며 떠났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이 약속을 뒤집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는 세법개정안 파동에 이은 복지공약 파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더 큰 곤경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더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번 진 전 장관 사퇴 파동을 기점으로 친정체제를 한결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존에도 인재풀이 좁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박 대통령이 앞으로는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찾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홍사덕 전 의원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에 오르고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월 재·보궐 선거 경기 화성갑 후보로 공천을 받은 것은 이런 전망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특히 서 전 대표 공천은 ‘청와대 낙점설’이 불거지면서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한 와중에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는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에 오른 홍사덕 전 의원. 이종현 기자
친박계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이런 관측과 달리 박 대통령의 직할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른바 관료 중심 국정운영 기조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 여권 인사는 “진영 전 장관도 아무리 왔다갔다했지만 누가 뭐래도 친박 정치인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박 대통령이 ‘정치인은 결국 자기 정치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며 “대통령으로서는 말 안 듣고 자기 잇속 챙기는 정치인보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료 출신을 더 등용하고 싶지 않겠느냐. 관료 출신들의 경우 인사검증에 상대적으로 강하고 전문성도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측들에도 불구하고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부정적 평가층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현상”이라며 “청와대가 반 여권 성향의 국민들이 결집할 명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