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로부터 6백여 년이 흐른 지금 ‘천도’문제가 다시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애초 행정수도 및 청와대 이전 문제가 제기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 조선시대의 천도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지만 박 대통령은 국가 권력의 안전 때문에 천도 문제를 논의했다.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이 그 발단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청와대 이전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했지만 현실적인 장벽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수도 이전에 대한 여론은 찬반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노무현 당선자는 과연 ‘선배’들이 실패한 ‘천도’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대통령직인수위측은 공약으로 내걸었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수도를 이전할 경우 청와대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풍수지리전문가들은 행정수도와 청와대 이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일요신문>은 지금까지 주로 학술적으로 논의된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법의 하나로 풍수지리전문가와 역학자들이 ‘천도’에 대해 내놓는 다양한 ‘점괘’를 들어봤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청와대 터를 국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청와대 터는 왕성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이것이 곧 국운의 부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왕성한 지기가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국운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풍수지리전문가들은 지금의 청와대 터가 처음부터 잘못 쓰여진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민족 정기를 끊어버리기 위해 조선의 상징인 경복궁의 후원격인 현재의 청와대 터에 조선총독 관저를 지었다는 것.
기를 모아 명당(경복궁)에 공급하는 수문 구실을 하는 현 청와대 터에 대형 건물을 세움으로써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조선의 정기를 고갈시키려는 의도에서 총독관저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조선 총독을 지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후 이곳에서 생활한 역대 대통령들도 불행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청와대 터를 옮기자는 주장이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하면서 청와대도 그 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풍수지리학자들은 청와대의 새 명당으로 어디를 점치고 있을까.
▲ 지난 12월8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후보가 대전에서 행정 수도 이전에 관해 기자회견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삼한산림비기>에 따르면 “계룡산 시대는 한양보다 대는 짧을 것이나 밝고 훌륭한 임금과 올바른 신하가 연이어 나오고 아름다운 문화를 활짝 꽃 피울 것”이라며 차기 ‘수도’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
예로부터 우리나라 예비 도읍지로 계룡산이 으뜸으로 꼽히는 까닭은 계룡산의 정기가 그만큼 크고 빼어나기 때문. 특히 박 사무총장이 주장하는 길지는 계룡산의 주산인 천황봉 남쪽에 자리잡은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 지역이다. 그는 “천황봉은 계룡대에서 바라보면 웅장하고 중후한 느낌을 주며 삼각형으로 좌우의 균형이 바르다”고 말한다. 또한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이 머리가 옆으로 틀어져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도 기울어진 산봉우리 없이 바르고 단정하게 앉은 모습이라 안정감을 준다”고 지적한다.
풍수지리에서 산세가 인걸을 배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두 지역의 대조적인 모습은 흥미를 끈다. 서울의 산세는 주산인 북악산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지도자가 배출됐다는 해석이다. 반면 계룡산의 주산인 천황봉은 바르고 단정하며 또한 수려해서 여기서 나온 지도자는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균형을 잃지 않는 ‘성군’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계룡산 일대의 경우 천황봉뿐 아니라 청룡과 백호에 해당하는 봉들이 높이가 서로 비슷하며 안정감이 있고 힘이 넘치며 서로 다정하게 감싸안은 형상이라고 한다. 터의 기운이 이렇기 때문에 지역갈등이 없어지고 소득분배가 잘 이루어지는 공평한 사회가 꽃을 피우고 국민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할 것이라고 한다.
박형용 사무총장은 “계룡산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의 도읍지로 준비된 땅이다. 그래서 계룡산 천도 문제는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누구도 자연의 섭리와 국운을 거역할 순 없다. 노무현 당선자 임기 내에 청와대가 그쪽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며 계룡산 ‘천도’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국풍수지리연구원 조중근씨도 조심스럽게 계룡산 아래를 차기 청와대 터로 점치고 있다. 그는 “청와대 터는 안 좋은 것으로 워낙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이전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차기 터로는 계룡산이 좋을 듯하다. 계룡산은 강한 힘을 나타내는 산세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두대간에서 잘 뻗어 내려오던 산맥이 계룡산에서 한 번 막히게 된다고 한다. 계룡산은 백두대간의 유연한 흐름을 힘으로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지세에 힘이 있다는 주장이다.
조씨는 또한 “우리나라는 지금 하강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IMF 때 하강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극복하는 듯 보였지만 지금은 다시 하강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하강기운이 있으니까 오히려 힘이 좋은 계룡산 정기를 타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안정적인 국운 상승을 기대한다면 공주도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 풍수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일제가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은 옛 조선총독 관저 터에 그대로 자리잡아 ‘명당’이 아니라고 한다. | ||
특히 명당에 물이 끼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많다. 이들은 후보지역으로 충남 공주군 장기면이나 청양군 목면 일대를 꼽고 있다. 역술인 최성훈씨는 “계룡대는 물이 없어서 안된다. 청와대 터는 금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라야 한다. 공주군 장기면쪽이나 청양이 좋다. 칠갑산 줄기를 타고 있고 금강과 백마강을 끼고 있어 천혜의 명당으로 볼 만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새 행정수도 터로 거론되는 계룡대 일대에 대해선 “절대 안된다”며 막아섰다. 그는 “물이 없고 지역도 좁아 계룡대는 최적지가 아니다. 계룡의 ‘용’은 실제 있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도 실제로는 그 형상을 볼 수 없으니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만약 계룡대로 정한다면 말만 요란할 뿐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풍수지리가 청풍선생도 계룡대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수도를 옮긴다면 강이 있는 곳이 풍수지리상 맞다. 순리를 거역하고 물을 다른 곳에서 끌어쓰는 역리는 말도 안된다.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니 터를 옮긴다고 해도 맥이 막혀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큰강이 흐르는 곳이 기본적으로 좋다. 금강 근처 공주 지역을 최적지로 본다.”
청풍선생은 3군 본부가 들어서 있는 계룡대의 지세에 대해서는 “군대진지가 있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명당”으로 봤다. 원래 군대진지가 있는 곳에 물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행정수도 같은 곳은 반드시 강을 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룡산과 공주지역 이외에 대전 일대를 선호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역술인 구청수씨는 “한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으면 전체를 품는 형상이라 강한 지도력과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세다. 하지만 계룡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많다. ‘사공’이 많아 의견을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하고 분열하게 되며 걱정 근심 할 일이 많이 생길 자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봉산 아래 서대전(유성쪽)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서대전 뒤로 구봉산이 도시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한 곳으로 의견이 잘 모이고 화합할 수 있는 지세라는 해석이다.
그 밖의 후보지역으로는 충북지역쪽이 명당으로 꼽혔다. 행운풍수의 김경훈씨는 충북 청원군 부용면과 현도면 사이에 있는 죽암휴게소 일대를 좋은 자리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맥을 보면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출발하여 서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칠현산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의 가지와, 역시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출발하여 굽이굽이 서북쪽으로 올라와 부여에서 끝나는 금남정맥의 가지가 있다. 이 두 개의 정맥의 중간 줄기가 어우러져 만나는 곳이 청원군 부용면과 현도면의 중간인 현재 죽암휴게소 근방이다. 이곳은 두 정맥의 힘찬 줄기가 금강을 사이에 두고 그 흐르던 기운을 멈추고 있으며 또한 그 옆으로 또다른 금남정맥의 한 줄기가 달리던 기운을 멈추고 합세하여 세 산맥의 기운과 금강이 만나고 있어 새 행정수도의 최적지로 판단된다.”
풍수지리전문가들은 대체로 행정수도와 청와대 터를 이전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었다. 서울의 기운이 다했고 특히 청와대 자리는 역대 대통령들의 운명에서 보듯이 ‘명당’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역을 거명하는 것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전문가들도 많았다.
사단법인 한국자연지리협회 노영준씨는 “현장을 봐야 정확한 지세를 알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후보지역을 거명하는 수준일 뿐이다. 본격적인 이전 계획이 실행된다면 여러 지역을 선정해서 지세를 관찰해야만 한다. 하지만 서울의 기가 다 됐기 때문에 내려가야 한다는 것은 맞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