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한 장면.
하지만 결국 경찰에 꼬리를 밟힌 ‘역삼 패밀리’는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다. 조사에서 드러난 피해금액만 1200만 원에 달해 경찰은 주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절도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의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쉽게 풀려난 학생들은 또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경찰조사를 받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강남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을 훔쳐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또 다시 적발되기까지 한 것. 이에 경찰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두 번의 훈방으로 ‘나는 붙잡혀도 처벌받지 않는다’라는 확신을 가진 일진들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또래 학생들에게 돌아왔다. 보복은 물론이고 괴롭힘의 강도도 높아졌다.
지난 9일 공휴일임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김 아무개 군(18)도 피해학생 중 하나였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김 군은 “대치동 학원 다니는 애들 중에는 일진 무리를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번에 경찰이 잡아가고 난 뒤에 보름 정도는 조용했는데 그 뒤부터 다시 나타났다. 부모님도 걔들을 알고 있는데 아무 말 못한다”며 “일진이 부르면 그냥 돈을 주고 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등학생 이 아무개 양(18)도 강남 일진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이 양은 “걔들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자기 아빠가 판사라고 말하는 애도 있다. 몇 번 잡혀간 애들도 부모님 덕분에 쉽게 나온다는 소문도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그냥 조심하라고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한바탕 강남 일진이 이슈가 되고 난 후 세력이 더욱 커졌다는 말도 나왔다. 한 학원차량 기사는 “나도 몇 번 일진 학생들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매번 신고했지만 훈방되고 말더라. 경찰 단속 이후 요즘에는 그런 애들(일진)이 더 많이 보인다. 경찰 단속에도 안 걸린다는 소문을 듣고 주변의 일진 학생들이 이곳까지 넘어와 활동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근의 파출소 관계자는 “(가해학생들은) 판사, 의사, 교수의 자녀들인데다 집안에 돈도 많다. 잡아도 금방 풀려나니 순찰만 강화할 뿐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