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중간의 긴장 고조로 박 대통령의 외교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김 장관은 “분명히 MD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국형 MD(KAMD)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MD의 핵심이랄 수 있는 중고도 요격체계(THAAD) 도입 여부에 대해 “도입을 결정하지도 않았고 고려하지도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물론 미국·중국 등과 연관된 외교적 사안에 대해, 더욱이 안보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장관이 ‘분명히’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못을 박듯이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틀간 이어진 두 장면은 가시밭길 앞에 선 박근혜 정부 외교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의 관계는 물론 미·중이 얽힌 동북아 외교에 이르기까지 만만한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집권 1년차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비행을 가능케 했던 외교·안보 분야가 이제는 더 없이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의 튼튼한 공조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국제무대에서도 중견국으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관통하는 특징은 균형과 다변화로 요약된다. 이는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10년간 한·미 관계가 격랑을 맞고, 이명박 정부 5년간 한·중 관계가 역주행했던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다. 포괄적 전략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국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이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보여준 친밀한 분위기는 한·중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있음을 만천하게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 EAS(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잇단 다자 정상회의 자리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ASEAN과 별도 안보 대화를 갖기로 합의하는가 하면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 등과는 MIKTA(중견국협의체)라는 연대의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8월 19일 개성공단 시설 점검 차 출경하는 한국전력 등 직원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지난 9월을 지나면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외교 및 대북 구상은 한꺼번에 흔들리는 양상이다. 우선 미·중 간의 긴장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군비 증강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면서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동시에 MD를 축으로 한 한·미·일 3각 군사공조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 등으로 극도의 재정난에 빠진 미국이 동북아 평화 유지라는 짐을 한국과 일본에 나눠지라고 드러내놓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동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국으로선 이 같은 미국의 요구에 무작정 응할 수 없다는 게 딜레마다. 엄청난 재정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이지만 한·미·일 3각 공조로 치우쳤다간 지금까지 중국과 쌓아 왔던 공든 탑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 중국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압박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 왜곡과 우경화 경향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함부로 일본의 손을 잡는 것은 또한 국민 정서에 반할 수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 이후 완전히 표정을 바꾼 북한 역시 골칫거리다. 통일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개성공단 재가동일인 9월 16일 이후 북한의 대남 비난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조 의원은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를 기해 대남 비난을 강화한 것은 처음부터 북한의 목적이 개성공단 재가동에 있었다는 것”이라며 “개성공단 재개로 인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또 다른 과시적 행태”라고 말했다. 이는 금강산 관광 정상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고도의 전략인 동시에 결과적으로 핵 문제를 미국과의 담판으로 풀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 및 대북정책이 중대 기로를 맞고 있다는 데에는 여권 인사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는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성과를 이뤄왔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며 “급격히 변하는 상황 속에 중심을 잃지 않는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