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이한구 서병수 등 중간보스급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사진은 2011년 전당대회 당시의 유승민 의원. 일요신문DB
“역대 국정감사를 보면 여권은 방패로, 야권은 창으로 공격과 수비가 뚜렷했다. 증인을 불러내면 야권은 다그치고, 여권은 다독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새 정부 첫 국감인데도 새누리당이 창과 방패를 모두 쥐고 싸우는 모습이다. 때로는 아군인 정부를 향해서도 창을 들어 보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공론장에서의 합법적 어필이기에 도발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회적으로나마 정부를 질타하는 모습에서 각자도생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박근혜 방어체제(PD, Park Defense)’의 아군 내 공격수 선봉에는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있다. 과거 박 대통령을 향해 “제대로 된 보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등 입바른 소리를 해왔던 원조 친박 유 위원장은 숨 고르기를 끝낸 듯 다시 쓴소리 모드다. 일각에선 “유 위원장이 정부를 향해 옐로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4일 국방부 국감장. 유 위원장은 우리나라와 미국 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2015년 12월) 재연기가 논의되는 것을 두고 “(박) 대통령, (김장수) 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세 분이 국민에게 몇 번 약속한 문제를 뒤집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득하고, 사과할 일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며 “어물쩍 넘어가고, 국군통수권자(대통령)가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은 별로 안 좋다”고 했다.
‘대통령 사과’라는 금기 표현이 여당 내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전부터 유 위원장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겠다는 복선을 깔아놓았다. 지난 11일 최윤희 합참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유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DMZ(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조성’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1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아주 작은 사각형 공원에 (2014년) 통일부 예산을 402억 원을 쓰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제가 느끼기에 세계평화공원 구상이 아직 굉장히 황당한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를 두고 정치공방이 지금까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아직 북한과 협의도 되지 않은 DMZ 평화공원을 두고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로 수백억 원의 ‘묻지마 예산’을, 그것도 첫 해에 편성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유 위원장은 그런 당 안팎의 여론과 분위기를 청문회장에서 공론화한 것이다.
희미한 친박, 힘 빠진 친이, 힘 못 쓰는 중립쇄신파 새누리당 곳곳에서 계파 융·복합이 포착되고 있다. ‘탈박’ 진영 의원(왼쪽)과 ‘친이’ 이재오 의원의 조합도 화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바깥에서 보기에는 매우 답답하다. 정부 정책 중에 일자리 창출과 재정 건전화는 경제 활성화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 희망이 없는 분야인데 계획만 잔뜩 세워놓고 실천이 잘 안 되고 있다. 공약 이행을 위한 세수 확보, 재정지출 구조조정, 공기업 부채 문제도 자를 것은 잘라야 한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이한구 의원, 전 원내대표)
“경제적 전환기를 모색하는 시점에서 실질적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할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경제부총리가 관행과 타성에 젖어 있는 것 아니냐.”(서병수 의원, 전 당 사무총장)
“경제 활성화도 안 되는데 일자리 창출이 되는가. 경제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세수는 안 들어올 것이다. 좀 더 뛰어야 한다.”(나성린 의원, 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야당에 버금갈 정도로 박근혜 정부 경제팀을 질타한 이들의 면면을 보자. 이한구 전 원내대표는 18대 국회에서 박근혜 가정교사로 알려지면서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군에 항상 올라 있다. 이 전 원내대표는 원조 친박으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친박계 핵심 의원임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서병수 전 사무총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는 원조 친박에 속한다. 공천이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의중이라는 함수 속에 있다면 서 전 총장의 쓴소리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 7월 최경환 원내대표나 조원진 의원 등이 경제 컨트롤 타워의 무능을 거론하며 경질 파장이 일었을 때, 박 대통령이 직접 불을 끈 것을 감안하면 이들 경제통들의 질책은 그 너머에 있는 박 대통령을 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울타리 속에서 이제는 밖으로 나가자는 선발대가 꾸려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행간을 보면, 정부가 현 경제 위기 상황을 돌파할 능력이 없다고 꾸짖은 것 아니냐”며 “임기 첫해에 총체적 국정 난맥상을 지적한 점, 그것도 친박계의 중간보스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 점을 청와대는 뼈아프게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초선 의원 10명 안팎과 식사자리를 가져 주목받았다. 이날 건배사는 최 원내대표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다고.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진영 의원은 ‘친박→탈박→복박→핵심→실세→탈박’이라는 정치적 항해를 한 인물이다.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할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7년 이명박 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 때 ‘현역 의원이 캠프에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뛰쳐나갔다가, 다시 당 정책위의장으로 복박했다. 하지만 그 이전인 2010년, 친이계 좌장인 이 의원이 은평구 보궐선거에 나섰을 때, 진 의원은 서울시당위원장 자격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진 의원의 부인이 은평구에서 소아과를 했고, 그가 어릴 때 은평구 연신내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도 은평을 지역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 진영과 이재오가 국회의원 생활을 12년이나 함께했는데 둘이 친하지 않다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결국 진 의원은 친이와 친박의 갈등에서 항상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여 왔고, 장관 옷을 벗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 마당에 다른 계파라는 이유로 이 의원과 소원해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는 적대적 계파는 없다. 친박이 다수지만 초선이 과반 이상이어서 끈끈하지도 않다. 같은 친박으로서의 역사가 없는 것이다. ‘희미한 친박, 힘 빠진 친이, 힘 못 쓰는 중립쇄신파’ 정도가 있는데 그래서 “얼마든지 합종연횡과 이종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계파 융·복합 분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포착된다. 최근 최경환 원내대표를 추앙(?)하는 듯한 식사자리가 여의도에서 이뤄졌다는 말이 있다. 10명 내외의 초선 의원들이 모였는데, 시종일관 최 원내대표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건배사마저 최 원내대표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다 하니 “최경환 키즈의 숫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회자한다. ‘친초이(親Choi)’를 표방한 초소형이지만 이 모임의 다단계식 확장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물론 현 새누리당 내 진지 구축의 선봉에는 김무성 의원이 가장 앞서 있다. 최근 부산의 박민식 의원을 알게 모르게 돕고 있다는 ‘김무성-박민식 밀약설’이 나오면서 김 의원이 곤욕을 치렀는데 최근에는 기류가 변해 김 의원이 서병수 전 사무총장을 도와줄 것이란 소문도 흘러나온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은 누가 누구와 얼마든지 손잡고, 누가 누구를 시시때때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앞으로의 새누리당은 ‘선거의 여왕’이 없는 상태에서 각자도생해 살아남는 자가 당권이든 대권이든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