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경후 씨는 지난 9월 23일부터 CJ오쇼핑으로 출근해 교육을 받아오다 지난 10월 1일자로 이 회사 상품개발본부 언더웨어침구팀 상품기획 담당 과장으로 정식 발령이 났다. 구체적으로 ‘이 과장’은 침구 사업 기획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장은 지난 2011년 7월 CJ(주) 기획팀에 대리로 입사해 같은 해 12월 그룹 계열의 영유아 교육콘텐츠 업체인 CJ에듀케이션즈로 자리를 옮겼으며, 지난 3월부터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CJ에듀케이션즈는 CJ오쇼핑의 자회사(지분율 94.79%)로 지난 2011년 설립됐다. 지난해 기준 1억 56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50억 9900만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한 적자 회사다. 또 지난해 말 기준 55억 원의 자산에 47억 원의 부채를 갖고 있는 이 회사는 8억 6000만 원의 자본으로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반면 CJ오쇼핑은 지난해 국내 홈쇼핑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매출 1조 773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571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출 기준 국내 홈쇼핑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회사다. 특히 이 회사는 최근 해외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며 오는 2020년까지 세계 1위 홈쇼핑 등극을 목표로 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도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며 덩치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와 관련, CJ오쇼핑은 최근 필리핀 최대 민영 방송사인 ABS-CBN과 총 자본금 500만 달러 규모의 합자회사 ‘ACJ’를 50 대 50 비율로 설립했다. 지난 15일부터 필리핀 수도권 지역인 메트로 마닐라를 포함해 주요 5대 도시 180만 가구를 대상으로 24시간 시험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로써 총 7개국에서 9개 홈쇼핑 사이트를 운영하게 됐다.
이경후 과장은 전 직장인 CJ에듀케이션즈에서 태블릿 PC 등 다양한 스마트 PC에 연동되는 아동용 학습콘텐츠의 기획 등을 담당하며 지난 3월 애플리케이션 기반 학습지 <나는 생각>을 시장에 내 놨다. 지난 2011년 지주사부터 CJ오쇼핑까지 죽 기획 업무에만 투입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장의 CJ오쇼핑 이직을 계기로 회사 측이 그에게 힘 실어주기에 나서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CJ에듀케이션즈는 지난 16일 CJ오쇼핑을 통해 이 과장이 직접 기획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나는 생각> 통합 풀 패키지를 론칭 이후 최초 판매했다.
한편 이재현 회장의 장남이자 이 과장의 남동생인 선호 씨는 지난 6월 말 CJ(주)에 입사한 뒤 7월 1일 신설된 그룹의 미래전략실(현 기획실)에서 실무교육을 받아오다 최근 CJ제일제당에 배치됐다. 아버지인 이 회장이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직후에 선호 씨가 CJ에 입사한 것으로, 지난 7월 중순에야 뒤늦게 알려지면서 CJ그룹이 초유의 오너 공백 사태를 대비해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선호 씨 인사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정식 발령인지 순환 교육 차원인지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최근 진행된 그룹 인사 및 조직개편 등과 마찬가지로 이들 3세의 인사에도 이미경 부회장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이식 수술 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그룹 전반으로 경영 범위를 넓히고 있는 또 다른 오너 이 부회장이 조카들의 근무지 결정에도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 자녀들 이직의 경우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회사를 옮긴 것으로 이 부회장이 고모로서 조언 수준의 의견을 낼 수는 있었을 것”이라며 “본인의 의사와 가족 등 주변의 권유를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 자녀들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데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경영 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본격 후계 채비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J가 최근 지주사 대표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륜이 쌓인 이채욱 부회장을 앉힌 것은 이 회장 공백이라는 비정상적 경영 체제의 조직을 보다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며 “조직 안정화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쇄신하고 3세들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경영 수업을 받게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 자녀들이 아직 20대로 어리지만 3세 경영에 조금씩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향후 경영권 승계 이후 남매간 후계 구도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CJ의 경우 여전히 장자 우선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 회장이 동생이지만 장남으로서 그룹을 이끌고 누나인 이 부회장은 자신의 관심 분야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이 분야를 크게 키웠다”며 “이를 고려해 봤을 때 향후 지주사는 장남인 선호 씨가 맡고, 딸인 경후 씨는 다양한 계열사들을 경험한 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 관측했다.
CJ그룹 측은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은 수십 년 뒤의 일이 될 것”이라며 “3세 경영 운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