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이 지주회사 CJ(주) 신임 대표로 이채욱 대한통운 대표를 선임하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일요신문 DB
CJ(주) 대표는 CJ그룹 내 CEO(최고경영자) 서열 1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상징성과 권한이 막강하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직함도 부회장인 데다 기존에 맡고 있던 CJ대한통운 대표 자리까지 겸직, 영입된 외부인사로서 ‘초고속 승진’을 하며 CJ그룹에서 단숨에 오너 다음 위치에 서게 됐다.
사실 5인으로 구성된 그룹경영위원회에 이 대표가 포함됐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룹경영위원회를 구성했던 다섯 사람은 손경식 CJ그룹 회장, 이미경 CJ E&M 부회장, 이채욱 CJ 대표, 이관훈 전 CJ 대표,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으로, 이 대표를 제외하고는 CJ그룹 오너이거나 그룹 내에서 ‘가신’으로 통하던 인물들이다.
김철하 사장이 비록 대상그룹 출신이기는 하지만 지난 2007년 CJ제일제당 바이오연구소장으로 영입됐으며 CJ제일제당 총괄부사장 등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오른 만큼 이채욱 대표와 비교하기는 무리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출신인 이채욱 대표는 지난 4월 1일 CJ대한통운 대표(부회장)로 취임하기 전까지 CJ그룹과는 관계가 없었던 인물이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인천공항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임기가 8개월이나 남은 상태였다. 이 대표는 곧 CJ GLS와 CJ대한통운의 합병으로 지난 4월 새롭게 출범한 CJ대한통운의 대표로 영입됐다. CJ그룹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물류회사인 만큼 인천공항 사장으로서 경험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공기업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불과 2개월 만에 대기업 계열사 대표, 그것도 오너 다음인 부회장으로 영입된 이 대표는 이재현 회장의 구속으로 총수 공백 상태가 빚어지자 그룹경영위원회 멤버로 포함됐다. 그리고 또 3개월 만에 이번에는 지주회사 대표까지 겸직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관훈 전 대표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선임으로 CJ그룹 내부가 크게 동요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CJ는 가족·가신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이라면서 “순수 외부인사를 영입하자마자 서열 1위에 배치한 것은 이재현 회장이 더 이상 가신들을 믿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 대표 선임과 동시에 이관훈 전 대표가 아무 역할도 맡지 못한 채 물러난 것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 전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CJ그룹 내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서열 1위였다. 그룹 홍보를 책임졌던 신동휘 부사장 역시 복귀한 지 불과 넉 달 만에 계열사인 CJ대한통운 전략지원실장으로 내려갔다.
이번 인사에는 이재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구속 상태지만 총수의 사인 없이 수시인사를 단행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회장의 지휘로 이뤄진 인사라고 볼 수도 있다. CJ그룹 역시 굳이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가신들에게 구속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외부인사로 위기를 정면돌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CJ는 예전부터 외부인사를 자주 써왔으나 오히려 외부인사 영입과 중용으로 낭패를 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의중이 ‘가신’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인물들에게 중책을 맡기는 쪽으로 기운 것이라는 해석에 CJ는 극구 손사래를 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전 대표의 경우 검찰 수사와 함께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며 아무 직책을 맡지 않은 것도 그런 차원”이라며 “신 부사장이 새로 맡은 전략지원실장은 대관과 홍보, 법무를 함께하는 중요한 직책으로서 결코 ‘좌천’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계 고위 인사는 “인사란 원래 책임인사가 대부분 아니냐”면서 “CJ그룹 인사도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인천공항 사장 임기중 사임 ‘뒷말’
두 차례나 연임에 성공하며 이명박 정부 내내 인천공항 사장으로 재직하던 이 대표는 지난 2월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가 8개월이나 남은 상태였고 새 정부 들어 공기업 사장으로는 처음으로 사임함으로써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천공항 사장직 사임에 대해 이 대표는 “(인천공항 3단계 확장사업을) 차기 사장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이 대표는 불과 2개월도 채 안 돼 CJ대한통운 대표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대표는 인천공항 사장 시절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인천공항급유시설(주) 운영권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난 바 있다. 또 2012년 11월에는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이채욱 당시 인천공항 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고소한 일도 있다. 당시 고소 건은 사상 초유의 공기업 간 고소로 구설에 오르며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다. 이후 한국관광공사는 고소를 취하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