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는 지난 16일 폭행과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사건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각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현행범으로 당장 체포하지 않았다. 좀 더 명확한 물증과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경찰은 손에 피를 흘리며 머물던 이천수에게 구급차가 필요하느냐고 물었지만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본격화됐다. 15일 이천수는 일부 매체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또 폭행한 적도 없다. 실제보다 일이 훨씬 확대돼 보도되고 있다. 더욱이 곁에 아내가 동석한 자리였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폭행도 하지 않았다. 만약 (김 씨를 때렸다면) 현행범으로 바로 경찰서로 잡혀 간다. 그리고 맥주병들을 깬 것은 분노를 표출하려던 게 아닌, 분을 참기 위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당방위에 초점을 둔 뉘앙스가 다분했다. 인천 구단도 이천수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사건이 벌어진 14일은 인천 선수단의 휴가였다. 인천 김봉길 감독도 “경찰 조사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은 선수 본인이 결백을 주장한다”며 제자를 감쌌다.
처음 이천수의 술집 출입과 폭행 사건 연루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때 많은 축구 팬들은 이천수의 일방적 주장을 인용해, 선수의 결백을 믿었다(정확히 말하자면 ‘믿고 싶었다’). 이천수 사태에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에는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이천수를 향한 일방적인 옹호의 글들이 나돌기도 했다.
기가 막힌 반전은 16일이었다. 사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피해자 김 씨 측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고 나섰다. “이천수의 폭행은 분명 있었고, 현장에 처음부터 있었다던 아내는 사건 이후에 등장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날 오후 이천수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3시간 반가량 조사를 받았고,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술자리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과 정황을 종합해 이천수의 폭행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당방위를 운운한 이천수는 정작 경찰 조사에서는 “술에 취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범법자들의 빤한(?) 논리를 펼쳤다. 불구속 입건은 당연했다. 불과 사흘 만에 기류가 뒤바뀌었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천수가 언론을 이용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애꿎은 가족까지 끌어들인 점도 지탄을 받았다.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 이틀간 이천수를 감싸던 일부 팬들과 인천 구단은 또 다른 피해자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정당방위 여부가 아니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천수가 술집 출입을 했고, 그것도 자신이 사람을 때린 것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과음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선수단 휴가였다지만 지금은 막판 순위 싸움이 한창이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정규리그까지 잘나가던 인천은 스플릿 시스템 라운드에 돌입한 뒤 무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음주와 폭행은 과거 이천수가 술집 여자 종업원을 때리고 축구 후배를 폭행한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용서를 구할 수 없다.
더욱이 이천수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저버렸다. 임의탈퇴 신분으로 한참 그라운드를 떠나 있다가 간신히 용서를 구한 뒤 2월 인천에 입단하면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싶다.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되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입단 이후에는 인터뷰를 통해 금주 소식까지 전해왔다. 6월 아내의 출산에도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달라질 자신을 선전했다. 심지어 국가대표팀에 복귀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내비쳤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금주 선언은 무용지물이었고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언론 플레이로 대중을 기만했다. 잠시나마 ‘확 바뀔’ 이천수를 바란 팬들의 기대는 상처로 끝났다.
인천의 무리한 결정은 금세 화를 불렀다. 입단 7개월여 만에 이천수는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진정성, 반성은 없었다. 그를 향해 잠시나마 쏟아졌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어두운 이면을 주목하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