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 | ||
분당 사태 이후 처음 맞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안팎이 몹시 부산하다. 11월28일 전당대회에서 1인2표제 직선 투표로 치러지는 당의장 선거 때문이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발걸음은 물론 새 지도부 선출 이후를 상정한 당내 인사들의 이해득실 계산도 바빠 보인다.
당대표격인 당의장직에 입후보한 후보 8명 중 조순형 추미애 의원이 양강 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김경재 김영환 이협 장재식 의원과 김영진 장성민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5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하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다 득표자가 당대표격인 중앙위의장을 차지하고 나머지 4명의 다득표자가 최고위원격인 중앙위원 자리를 얻게 된다. 조순형 추미애 의원이 사실상 1,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나머지 후보들은 중앙위원 순위 안에 들기 위해 조순형 추미애 두 후보의 러닝메이트를 자처하며 득표전을 벌이고 있다.
▲ 왼쪽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화갑 전 대표와 대화하는 추미애 의원, 오른쪽은 지난 20일 공명선거 선포식서 만난 조순형 의원(사진 왼쪽)과 박상천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최병렬 대표가 ‘창심’(昌心·이회창 전 총재의 의중) 논란을 부추겼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설명한다. 당시 최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이회창 전 총재에게 삼고초려라도 할 것”이라 밝히면서 ‘이회창 향수’에 젖은 당원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평을 들었다. 이미 정계를 떠난 김 전 대통령의 ‘직접 지원’은 기대할 수 없지만 DJ의 ‘적통’임을 내세워 그 향수를 자극하면 득표력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이 당을 떠난 이후 한화갑 정대철 박상천 등 여러 중진들이 당대표를 지냈지만 민주당을 휘어잡을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이는 DJ 잔향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심’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의 배경에는 김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깔려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서청원 전 대표가 함부로 ‘창심’ 카드를 꺼내들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전 총재 정계복귀 가능성 때문이었다”며 “최 대표도 대표 당선 이후 이 전 총재와 비교되며 ‘카리스마가 없다’란 소릴 많이 듣지 않았나”라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정계복귀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던 이 전 총재가 함부로 거론하기 ‘위험한’ 대상이었던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이제 정치판을 공식적으로 완전히 떠난 분이다. 이번 대표 경선은 대의원들로 하여금 ‘누가 DJ의 진정한 후계자인가’란 생각을 심어주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민주당 유권자들이 DJ 후계자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해 찍어줬지만 노 대통령은 결국 당을 떠났고 민주당을 분열시키고 탄생한 신당(열린우리당)에도 곧 합류할 것 아닌가”라며 “이 허탈감을 채워주고 DJ 향수를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후보가 대의원들의 표를 얻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내에서 전당대회 변수로 지적하는 ‘김심’ 효과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월23일 첫 TV토론에서 후보들이 저마다 DJ와의 인연을 내세워 대의원들 마음을 잡는 데 주력한 것. 이 TV토론 이후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후보들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 대신 DJ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한 인사도 “후보들이 저마다 ‘DJ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데 치중하느라 당을 이끌어 나갈 비전 제시엔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심’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한 방편으로 상당수 후보들은 DJ의 대표적 측근 인사들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도 벌이고 있다. 박상천 현 대표와 한화갑 전 대표가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거론되는 DJ의 측근 인물들.
박상천 대표는 옛 정통모임 멤버들이 모두 조순형 의원을 지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일단 조 의원쪽으로 기운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 주변의 한 인사는 “박 대표는 이번에 구성될 게 총선용 임시 지도부이며 총선 이후 다시 전당대회를 치르기 때문에 자신의 향후 입지를 모색할 수 있는 인물을 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의원이 소문난 ‘원리원칙주의자’라서 새 지도부 구성 이후 당내 지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감안해 움직일 것이란 지적이다. 이럴 경우 경선 막판 추미애 의원에 대한 물밑 지지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
▲ 민주당 공명선거 선포식에 참석한 당대표 경선 주자들. | ||
이에 한 전 대표측은 “당권 주자들이 한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해오는 것은 사실이다. 선거 때인데 당연한 것 아니겠나”라며 각 후보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DJ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한 전 대표측은 “한 전 대표가 ‘리틀 DJ’로 불리긴 해도 DJ 이름을 이용해 정치를 하려는 분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DJ는 이미 현실정치를 떠난 분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한 전 대표측은 “조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의 화합에 좋고 추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면 당의 면모 일신에 도움이 되므로 누가 되든 일장일단이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측은 ‘DJ 적통’임을 내세워 박 대표나 한 전 대표측 인사들이 결국 당 화합을 위해 조 의원을 지지할 것으로 자신하는 분위기다. 조 의원의 한 측근은 “민주당은 신익희 선생이나 조 의원 부친인 조병옥 박사를 거쳐 50년 전통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라며 “DJ 후계자로서 조순형 의원만 한 적통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DJ를 모셨던 여러 중진들이 조 의원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편 추 의원측은 직접 언급은 삼가고 있지만 최소한 한 전 대표측의 지지는 기대하는 눈치다. 추 의원의 러닝메이트격이자 한 전 대표 ‘계보’로 분류되는 장성민 전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조순형 의원을 지지할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추 의원과 나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내 일각에선 ‘한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 중 일부는 추미애 의원을 지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각 당권 주자들의 ‘DJ 적자론’은 11월28일 전당대회장에서 최고조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 이전까지 TV토론만 3번 있을 뿐이지 대의원들 얼굴 보면서 하는 연설은 전당대회 연설이 유일하다. 이때 한자리에 모인 대의원들 마음을 열기 위해 저마다 ‘DJ 향수’를 자극하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민주당 당권주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DJ 적통’ 공방에 대해 김 전 대통령측은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 관련 언급을 일절 안 하신다”고만 밝혔다. 이미 정계를 떠난 사람이 민주당 관련 사안에 대해 논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