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3월 ‘평검사와의 대화’를 열어 검찰의 집단 항명을 돌파했으나, 퇴임 후 검찰 수사로 큰 고초를 겪었다. 연합뉴스
일선 검사들은 노무현 정권의 갑작스런 파격 인사에 반발 조짐을 보였다. 평검사 회의와 간부검사 회의가 잇따라 열렸고 정부의 인사 조치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강금실 전 장관이 기수·서열을 파괴하겠다는 검찰 인사정책을 내놓자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수차례 긴급회의를 열며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파동이 확산되자 2003년 3월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를 개최하며 검찰의 집단 항명 정국을 돌파하고자 했다.
“대통령도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팽팽한 공방이 이어지는 도중 터져 나온 검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과 노 전 대통령의 불쾌한 반응은 두고두고 여론에 회자됐다. 이렇듯 평검사와의 대화는 서로 간의 골을 더욱 확인하는 데 그쳤지만 결과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검찰의 자리 보전에 대한 집단 이기주의가 결국 항명사태를 불러왔다는 관측이 많았던 것. 이후로 노무현 정권은 검찰총장을 교체하고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38명을 대규모로 교체하는 등 항명을 잠재우고 검찰 개혁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으나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는 검찰과의 갈등은 정권 기간 내내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 시절 검찰 항명 사태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향한 것이라면 이명박 정권 시절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 파동’은 검찰 수장을 향한 항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의 발단은 당시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비리 사실이 발각되면서 촉발됐다. 김광준 검사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의 은닉자금을 차명계좌를 통해 받았다는 의혹과 유진그룹 내사무마 대가로 수억 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이윽고 비슷한 시기 서울동부지검에서 실무수습을 받던 전 아무개 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 등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이 밝혀지는 등 ‘성추문 검사 파문’이 터지면서 검찰 조직은 끝도 없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또다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이에 대한 개혁안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검찰 핵심 개혁안으로 논의됐던 중수부 폐지 공약 등과 궤를 같이 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개혁의 대대적인 서막이 올랐다”며 기대 섞인 관측을 보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최재경 중수부장(왼쪽)과 한상대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었다. 일요신문 DB
급기야 당시 채동욱 대검 차장과 대검 부장들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8층 총장실에 올라가 한상대 전 총장에게 “중수부장 감찰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라”며 용퇴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상대 전 총장은 “용퇴하라는 의견을 철회하라. 그럼 너희들도 같이 나가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 한상대 전 총장은 “떠나는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을 남기며 결국 씁쓸하게 퇴진하고 말았다.
한상대 전 총장을 향한 최재경 전 중수부장의 항명사태가 촉발된 것은 공안통과 특수통의 해묵은 갈등이 폭발한 것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공안통으로 유명한 한상대 전 총장이 특수통의 ‘심장’이라 일컫는 중수부를 손대려고 했다가 결국 피를 봤다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는 일련의 검란도 특수통과 공안통의 물밑 갈등 아니냐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검란의 주인공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역대 정권의 대표적인 검찰 항명 사태에서 보듯 검찰 내부는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검란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반드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번 검란의 승자와 패자가 누가 될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란의 결과가 어찌됐건 그 과정을 볼 때 검찰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검찰 조직의 개혁 필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