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씨의 생전 모습(왼쪽). 대학 시절 미모의 재원으로 꼽혔다.
그렇다면 당시 사건의 내막은 무엇일까.
피해자 황 씨는 우수한 성적과 리더십은 물론, 대학 시절 미모의 재원으로 꼽혔다고 한다. 그러다 학교 추천으로 2003년 D 공기업에 입사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당시 황 씨는 유 씨에게 “엄마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간 게 기적 같아”라고 말하며 매우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행복해 하던 황 씨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황 씨는 어느 순간부터 “차를 사 달라” “나를 데리러 와 달라”며 어머니 유 씨에게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D 공기업은 산중에 위치했기 때문에 당직이라도 서는 날이면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쉽게 차를 구입할 수 없었던 유 씨는 황 씨에게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유 씨는 “그때 딸이 얼마나 괴로운 상황인지 알았더라면 당장이라도 차를 사줬을 것이다”라고 원통해 했다.
황 씨가 이토록 괴로워했던 이유는 알고 보니 직장상사 이 씨 때문이었다. 사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던 황 씨에게 인사과장 이 씨는 끊임없이 접근했다. 당시 이 씨는 재혼해 7개월 된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게다가 재혼한 상대는 황 씨가 입사하기 이전에 근무하던 비서실 여직원이었다. 후임으로 들어온 황 씨가 이 씨의 새로운 표적이 된 셈이었다.
사건 발생 5일 전 황 씨가 미니홈피에 남긴 글. 살기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희롱이 계속되자 직장 동료가 이를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중 평소 황 씨에게 연모의 마음을 갖고 있던 고 아무개 씨(38)가 “황 씨를 성희롱하지 마라. 회사에 다 폭로해버리겠다”고 이 씨를 향해 경고를 한 것. 하지만 이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황 씨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야 만다. 그날 황 씨는 당직 근무로 밤 10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늦은 밤에 집에 갈 교통수단이 없자 고 씨가 황 씨를 차에 태워 분당 서현동 버스터미널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를 바싹 붙은 또 다른 차가 있었다. 다름 아닌 이 씨의 차였다. 이 씨는 두 사람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황 씨를 확 낚아챘다. 그 모습을 본 고 씨는 “할 말 있으면 다음에 하라”며 이 씨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씨는 결국 황 씨를 납치하듯 차에 억지로 밀어 넣고 곧바로 출발했다. 이윽고 이튿날 황 씨는 경기도 양평의 한 도로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씨가 황 씨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끝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 씨의 차 안에는 황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핏방울이 곳곳에 튀겨있었다.
문제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여러 정황에서 드러난 스토킹과 성희롱에 이은 살해 사건이라는 추정과는 달리 경찰에서는 이를 ‘내연관계’에 의한 치정사건으로 본 것이다. 즉 “약 10개월 전부터 황 씨와 이 씨는 연인 관계였고 황 씨가 이 씨에게 ‘그만 만나자’고 하자 이 씨가 격분해 황 씨가 살해하게 된 것”이란 게 경찰 수사 결과였다.
이 씨 측 변호사가 법정에서 황 씨가 이 씨에게 보낸 연애편지라며 제출한 증거물. 추후 이 씨가 작성한 허위 편지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미니홈피 글이 메일이 아닌 것을 확인 정정하였고 내연관계도 확인된 바 없다는 사실로 정정해 (당시) 검찰에 추송서를 보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추송서를 보낸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이후 법원에 올라가기까지 둘 사이가 연인 사이라는 내용이 전해져 큰 피해를 입었다. 경찰이 지나치게 내연관계로 몰아간 의심이 든다”라고 여전히 반박하는 상태다.
무엇보다 유족은 황 씨가 살해되는 순간 이 씨가 황 씨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단순한 살해가 아닌 ‘강간살인’이라는 것. 이는 시신이 발견된 당시 황 씨의 치마가 위로 걷혀 올라간 것과 속옷이 벗겨진 점, 속옷에 진흙이 뭉개진 흔적이 있는 점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유족 측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강간살인이 명백하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았다. 이 씨는 단순한 살인죄뿐만 아니라 성폭행 혐의까지 추가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 씨는 법원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법정 싸움에서 이 씨의 변호인은 “황 씨가 이 씨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며 증거자료로 편지를 제출했으나 이는 이 씨가 스스로 작성한 허위 편지였던 점이 추후 필적 감정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사건 초기 치정사건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끝내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마무리된 이번 사건이 전격적으로 재수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