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년 12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 | ||
실제로 92년 대선 때엔 김영삼 민자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국민당 후보에게 각각 13명씩의 무술경관들이 배치됐다. 이종찬 백기완 후보 등 군소정당 후보들에게도 경호경찰이 2명씩 배치됐지만, 박찬종 무소속 후보는 본인이 거부했다.
또한 경호요원과는 별도로 각 후보의 집에도 경비병력이 고정배치됐는데, 김영삼 후보의 집에는 1개 중대에 해당하는 무려 1백2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김대중 후보와 정 후보의 경우엔 각각 30명과 12명 수준이었다.
지난 97년 대선 때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에게 각각 17명씩의 경찰 요원들이 일괄적으로 파견됐다. 그리고 경감급인 경호팀 팀장은 각 캠프에서 선택하도록 ‘재량권’을 줬다. 당시 강아무개 경감은 이회창 후보의 총리 시절 경호를 맡았던 인연으로, 이아무개 경감은 이인제 후보와 동향이라는 점 때문에 각각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의 경찰경호팀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지역감정 시비를 의식해서인지 각 지역 출신들을 고루 선발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