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고급’ 정보지로 둔갑해 정재계 ‘큰손’들을 상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지라시도 첫 출발은 단순한 증권가 정보지에 불과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라시 업체의 한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지라시는 증권 거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재계 정보를 유용하게 가공해서 내놓은 소식지였다. 이미 나와 있는 기사들을 재편집, 재구성한 것이다”라며 “그러나 지라시를 찾는 독자가 늘면서 점차 전문화, 체계화되는 진화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고위급 정보 관계자들이 큰돈을 받고 스카우트 됐다”고 설명했다.
주식 상한가가 계속되던 밀레니엄 시기인 2000년 대 초반은 그야말로 ‘지라시’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전문업체는 아니지만 당시 ‘지라시’업체들은 무려 18~19개에 달했다고 한다(2013년 기준 지라시 업체 추청 수 5~6개). 앞서의 지라시 업계 관계자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국정원 정보과 직원들도 지라시 제작에 참여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지라시 업계는 나름의 공신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례로 2004년 현대차그룹 김동진 총괄부회장은 법정에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100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혐의’에 대해 “증권가 정보지(지라시)에 모 기업이 한나라당에 수백억 원을 제공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다. 업계 총수급 인사가 지라시의 말에 휘둘릴 정도로 지라시의 위상은 대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라시가 고위층의 전유물이라는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과 SNS 등을 중심으로 일반인들도 ‘지라시’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다. 정재계보다 접근성이 쉬운 연예계를 상대로 연예인에 대한 허위 정보가 남발되면서 지라시는 ‘고급 정보지’에서 ‘근거 없는 소문의 집합소’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유명 탤런트 최진실 씨가 자살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지라시의 근거 없는 소문에 기인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20여 개에 달했던 지라시 업체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몰락을 이어가던 지라시는 2011년 무렵 ‘SNS’ 서비스가 유행하면서 다시 한번 기사회생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휴대폰 메신저에서 바로 정보를 전송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정보 취급이 간편해졌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구조적 이유로 고급 정보 관련자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라시 업체들은 이젠 더 이상 예전처럼 고급정보를 모으기 위해 1급 정보 관계자들을 비밀리에 특정 장소로 모셔올 필요가 없어졌다. 지라시 업계 입장에선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한 셈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