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가 10월 30일 인사청문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동 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터라 검찰 독립성 침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측은 초원 복집을 도청해 김 비서실장 등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을 하며 김영삼 후보 지지를 논의했다는 내용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사건이 불거지자 서울지검 특수1부가 수사에 나섰다. 이때 특수1부장이 바로 정홍원 현 국무총리다. 또 수사 실무를 맡았던 주임검사는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다. 당시 김 비서실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지만 헌법재판소가 해당 규정을 위헌결정 내리면서 공소가 취소됐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인해 김진태 후보자에 대해서는 ‘보은인사’ 논란까지 제기됐다. 검찰총장 임명 이후에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춘 실장과의 ‘인연’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하는 김 후보자가 과연 검찰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흐트러졌던 조직을 추스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김진태 후보자의 첫 번째 과제는 공안통과 특수통 등 ‘내전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검찰 조직을 수습하고 조기에 안정시키는 것이다. 취임 이후 11월 말~1월 사이 단행하게 될 검찰 간부 인사는 김진태 후보자의 검찰 장악력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사상초유의 항명 사건으로 대검찰청의 감찰을 받고 있는 윤석열 여주지청장(53) 등에 대한 후속처리도 관심의 대상이다.
취임 이후 단행될 인사에서는 윤 지청장을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의 물갈이가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는 청와대가 특수통 라인에 대한 대폭 물갈이를 이미 주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 지청장과 함께 물갈이 대상에 오른 인물은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49)이다. 이들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재직 당시 ‘대윤’(大尹), ‘소윤’(小尹)으로 불리며 검찰 내 핵심으로 지목됐다. 비 특수 라인 검사들 중 일부는 “검찰 내 여론을 대윤, 소윤이 주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으로부터 특수수사를 훈련 받은 여환섭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45)의 경우 ‘4대강 입찰·담합 사건’과 ‘동양그룹 사기성 CP발행 사건’ 등 주로 사회의 구조적 비리를 수사해온 점을 고려해 문책성 인사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진태 후보자는 검찰 내부 혼란을 추스르면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흔적 지우기’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 한 관계자는 “김진태 후보자가 검찰총장 취임 이후 단행할 인사의 폭과 내용을 보면 청와대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55)과 윤석열 여주지청장 등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사건 수사 관련자들의 징계 수위도 고민거리다. 일선 검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지 못할 경우 검찰 조직은 다시 한 번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국정원이 파급력 강한 SNS까지 동원해 대선·정치 관련 활동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어서 재판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파장이 일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의혹들에 대해선 반드시 국민께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공약한 검찰 개혁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 특수수사 체제 개편을 위해 관련 TF를 구성해 내부 논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의 사퇴 이후 검찰 개혁 부분은 사실상 진전 없이 답보 상태로 머물러 있다. 김진태 후보자가 채 전 총장 시절부터 진행해온 검찰 개혁 문제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조직 안정에 집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검찰 인사 이후 진행될 대형사건 수사에 있어서 김 후보자가 청와대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일선 검사들이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검찰은 대검 중수부 대체 조직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동양그룹 사기성 CP 발행 사건을 수사 중이다. 특수2부는 수천억 원대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효성그룹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조세조사3부는 현대그룹 막후실세인 황두연 씨와 현정은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현대그룹 사건의 경우 현 회장과 여권 실세 A 의원이 친인척 관계로 얽혀 있어 수사가 예민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이 현재 진행 중인 대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조만간 검찰로 넘어오게 된다. 국세청은 세수 마련을 위해 롯데그룹과 포스코 등 전방위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이 효성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 역시 국세청 세무조사의 역할이 컸다.
검찰 내 주요 인지부서인 특수부와 금조부의 특성상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들의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이 불거질 경우 검찰은 정치적인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검찰총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진태 후보자가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일선 검사들이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검찰은 본연의 역할에 매진하면서 빠르게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현재 공기업과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가 진행되면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맡고 있는 이석채 KT 회장의 배임혐의 수사도 이목을 끌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앞서 검찰이 KT 본사와 계열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은 이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김진태 후보자는 공안과 특수로 양분된 검찰 조직을 다독이고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면서 본연의 임무인 수사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야하는 3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