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두산판 ‘난세의 영웅’으로 꼽히는 유희관(27)이 한국시리즈 이후 유명세를 제대로 실감 중이다. 프로 5년차. 그러나 개막 때부터 엔트리에 포함돼 풀타임을 뛴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유희관을 ‘중고신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애 최초로 프로야구 신인왕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가 NC 다이노스 이재학의 수상으로 시상식장에선 ‘꽃돌이’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유희관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까지 진출하면서 이재학이 경험하지 못한 포스트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유희관은 인터뷰에 앞서 사복을 유니폼으로 바꿔 입고 기자 앞에 나타났다) 시즌 종료 후 유니폼을 입고 만난 야구선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난 이 유니폼을 입었을 때가 가장 멋져 보인다. 아마 팬들도 내가 유니폼 입는 모습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웃음). 무엇보다 모자를 써야 폼이 난다.”
―잊지 못할 한 시즌을 보냈다. 생애 최고의 한 해가 됐을 것 같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만 차지했다면 모든 걸 다 이룬 셈이었는데…. 그러나 풀타임 첫 해, 이 정도로 시즌을 마친 것도 충분히 만족한다. 사실 포스트시즌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나한테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하는 부분들이었다. 야구하면서 한국시리즈 7차전 선발투수로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한테 포스트시즌은 한 편의 드라마나 마찬가지였다.”
―유희관한테 2013 포스트시즌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나.
“우리가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한테 2패했을 때는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그런데 2패 후 3연승을 거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서울 라이벌팀인 LG와 맞붙었다. LG와의 경기 전에도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이 LG 우세를 점쳤지만, 우린 그 예상을 뒤엎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포스트시즌에 치른 16경기가 페넌트레이스 128경기를 치른 것보다 더 집중했고, 더 재미있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속으론 피가 말랐지만 말이다(웃음).”
―플레이오프에선 MVP까지 수상했다. 참, 그 수상으로 100만 원 상당의 타이어 상품권을 받은 걸로 아는데, 어떤 용도로 사용했나.
“내가 승용차는 물론 아직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다. 그래서 평소 퇴근할 때 날 집까지 태워다준 (김)현수한테 넘겼다. 현수 집이 월곡동이고, 내가 사는 곳은 건대입구 쪽이다. 현수가 자주 태워다주곤 해서 잘됐다 싶어 현수한테 줬더니 사양하지도 않고 받더라. 상품권이 아까워서라도 올 겨울에는 면허증 획득에 도전할 생각이다(웃음).”
―두산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면서 체력 소진에 대한 염려가 컸었다.
“그건 순전히 기자 분들의 생각이고 편견이었다. 선수들은 정규시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신나는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다. 질 것 같은 경기를 이기고, 어려울 듯해 보이는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니까 힘든 줄 모르고 16경기를 치렀다. 체력 소진은 한국시리즈 7차전 종료 후 온몸으로 느꼈다.”
―2009년 두산 베어스 2차 6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엔 마치고 상무에 입단했는데, 당시엔 어떤 부분이 문제였다고 생각하나.
“나한테 주어진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살리지 못했다. 대학 때처럼 마운드에 올라가 자신감 있게 던지질 못했다. 차라리 제대로 던져서 얻어맞았다면 후회라도 안했을 텐데, 마운드에만 오르면 자꾸 떨리고 긴장되는 내 자신이 존재했다. 내 야구는 상무 입대 전과 입대 후로 나뉠 수 있다. 운 좋게 상무에 들어가 선발로 줄곧 투입되면서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게 상무에서 좌완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쳤고, 그 부분이 팀 복귀 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복귀할 때만 해도 내 목표는 시즌 개막 엔트리 진입이었다. 상무에서의 활약을 눈여겨 본 코칭스태프들 덕분에 처음엔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5월 4일,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LG전 선발 말인가? 그날은 원래 니퍼트가 선발로 나설 예정 아니었나.
“그러게 말이다. 나한테 행운이 찾아온 건 갑자기 몸이 아픈 니퍼트를 대신해서 내가 선발로 나가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거두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날은 라이벌인 LG와 어린이날 더비전을 갖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 팀 에이스 니퍼트 대신 내가 선발로 나가게 된 것이다. 팬들이 실망하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솔직히 나조차도 나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누가 내 활약을 기대했겠나. 그런 상황에서 등판해 무실점하고 첫 승을 챙겼으니…. 그 기분은 쉽게 설명이 안 된다.”
―유희관 하면 ‘느림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시곡 74㎞의 커브에서 138㎞의 직구를 던지는 투수인데, 이런 스피드를 갖고 프로에서 통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그만큼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얘기 아니겠나.
“스피드가 안 나온 건 내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아마추어 때는 그 스피드로 충분히 통했기 때문에 안주했던 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나도 빠른 볼을 던지고 싶다. 그러나 그게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물론 내년 시즌은 내 볼에 익숙한 상대 선수들로부터 호되게 당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그래서 또 다른 구종을 개발할 계획이다. 어렵게 잡은 주전 기회를 그냥 놓치진 않을 것이다.”
유희관은 좌완 부족에 시달린 두산 베어스가 25년 만에 낳은 좌완 10승 투수다. 하지만 우타자에는 강하고, 좌타자한테 약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을 보완해 가는 게 유희관이 안고 있는 새로운 숙제다. 올 시즌 26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던 유희관. 액수가 적은 아쉬움보다는 그 액수로 인정받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올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그로선 연봉에 대한 기대 심리가 크다. 어느 정도의 액수로 평가받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