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2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조순형 후보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두 당의 힘만으로 풀기가 불가능할 만큼 난마처럼 얽혀 있는 게 요즘 정국. 우선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조사 관련 특검법안이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정가가 재의결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민주-열린우리 3당 모두 신·구 대립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각 정파들은 민감한 정국 현안 해결을 모두 민주당 새 지도부 구성 이후로 미뤄왔다. 민주당 새 지도부의 색깔과 성향에 따라 정파간 공조 여부 같은 이해득실 계산이 달라지는 탓이다. 새 지도부를 구성한 민주당의 향후 ‘선택’에 따라 정국의 향배가 크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런 정국에 대한 대처법으로 조순형 대표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이중셈법’에 따라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사안에 따라 ‘파트너 선택’을 달리해 캐스팅보트가 아닌 실질적인 ‘정국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이려 할 것이란 지적이다.
현재 정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안은 노 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특검법 처리 문제다. 노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단식에 들어간 상태며 대대적인 ‘대 노무현’ 투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특검법안 1차 국회 통과 당시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던 바 있다. 특검법 재의결을 위해선 국회 의원 정족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회 의석수 2백73석 중 한나라당은 1백49석, 민주당이 60석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의결을 관철시키려면 민주당의 도움이 다시 한번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일단 정가에선 민주당 새 지도부가 특검법안 재의결 쪽으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경선 기간 동안 조순형 대표가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밝혀왔다”며 당론이 재의결로 모아질 것을 전망했다. 조 대표가 그동안 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퍼부어 온 것도 한나라당의 기대를 부풀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 상당수 의원들의 ‘반 한나라당 정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상천 전 대표가 특검법안 처리과정에서 한나라당과 공조를 추진하는 바람에 민주당 근간인 호남 정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검법안 1차 국회 통과 이후 ‘호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민주당을 위협할 수준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분석도 나오고 있다는 것.
이 중진 의원은 “일부 언론사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투쟁과 국회 등원 거부가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 같다”며 “조순형 대표가 당선되고 나서 선언한 ‘한나라-민주 양당구도’를 실현하려면 한나라당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조 대표가 박상천 전 대표나 정균환 의원 등 당내 정통모임 중진들과 ‘노선을 달리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상천 전 대표 등 정통모임 세력은 경선과정에서 조 대표를 지지했지만 이번 지도부를 ‘총선용 한시 지도부’로 여기고 있다. 조 대표가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의문”이라고 밝힌다.
박 전 대표를 주축으로 한 정통모임 멤버들은 그동안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한 열린우리당 압박을 외쳐왔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주장해온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조 대표가 다소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점으로 볼 때 대 한나라당 행보에서도 박 전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점쳐진다는 지적이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나라당을 도와 재의결을 추진하더라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란 관측도 조 대표에겐 부담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 대통령은 어차피 특검 재의결까지 염두에 둔 상태라 오히려 한나라당이 애먹는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을 도와 특검 재의결을 시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조 대표가 당내 반 한나라당 정서를 모를 리 없다”며 “특검 재의결로 가더라도 한나라당이 애를 먹게끔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조 대표가) 한나라당과의 공조 차원이 아니라 노 대통령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특검 재의결을 민주당이 주도했다는 인상을 남기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