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물론 정부는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비밀접촉이나 비공식적인 만남 자체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게 청와대와 관련 부처들의 설명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민주당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남북문제와 관련해 비선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북 특사설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북 특사라는 건 대통령이 보내는 건데 사실무근”이라며 “가고 싶다고 북한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 핵심 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했다. 올 봄 북한 대남부문 고위인사가 평양을 방문한 교포 학자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의 만남을 타진해왔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남측과 만나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사였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을 통해 제안 내용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겠다”며 비공개 접촉에 나서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잇단 대북 비밀접촉설은 남북관계가 가파른 대치국면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관심을 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북한의 격앙된 반응이나 냉랭한 남북관계를 보면 도무지 남북 당국 간 접촉이나 대화가 이뤄질 틈새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국방위 정책국이 내놓은 담화를 보면 북한의 심사가 얼마나 꼬여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정책국은 박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북한의 변화를 촉구한 데 대해 “남을 헐뜯고 비방하며 걸고드는 데도 정도가 있고 동족대결에 환장이 되어도 분수가 있기 마련”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그 애비에 그 딸이라고 박근혜가 이 세상에 삐어져 나올 때 첫눈에 익힌 것도 외세이고 애비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사대매국적 기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방위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책임자인 제1위원장(위원장은 사망한 김정일의 영구직위)을 맡고 있는 조직이란 점에서 김정은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의 해빙기가 좀처럼 찾아오기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이같이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밀접촉의 필요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과거 대북부처에 몸담았던 관계자나 북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막후 채널의 효용성은 당국의 공식 대화가 끊겼을 때 빛을 더욱 발한다는, ‘비밀접촉의 역설’이란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면에 국방위 정책국이 나선 점이 눈길을 끈다. 정책국은 이명박 정권 당시 남북 간 비밀접촉을 수행했던 기관이다.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 2011년 6월 “북남 간 비밀접촉이 5월 베이징에서 있었다”며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남북정상회담이 논의됐다고 폭로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깐깐한 대북 접근 자세 때문에 뜻대로 국면을 이끌고 가지 못하게 되자 ‘남측이 돈봉투를 건넸다’는 등의 주장을 드러내면서 당국대화의 문을 닫아건 행태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런 정책국이 박 대통령을 극렬하게 비방하면서 남측의 태도변화를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걸 두고 오히려 대남 대화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희망하거나 필요성을 느낄 경우 되레 극렬한 대남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비난 담화의 행간에 깔린 의미를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북 막후채널 가동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지지율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대북정책 약발이 지속되려면 현재의 대치국면이나 소강상태를 탈피할 돌파구 마련이 긴요하다. 집권 2년차인 내년 봄 정도에는 대북정책 골간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본격 가동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DMZ(비무장지대) 평화공원 구상이나 인도주의 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한-러 정상회담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다. 바로 러시아를 통한 대북 우회진출이란 전략이다. 대북 영향력 확대가 긴요한 푸틴의 구상에 보조를 맞추는 차원에서 그의 나진-핫산 개발 플랜을 지지해주고, 코레일과 포스코 등 한국기업의 대북투자 빗장도 풀어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강력한 수호의지를 밝힌 5·24 대북제재 조치에 작은 물구멍이 날 수 있는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간 이행해야 할 합의와 약속의 기준점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잡는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의 소통 결과물이다. 그 시작이 이후락 정보부장의 비밀방북이란 막후접촉이란 점을 모를 리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 대북구상의 남북 간 합의가 될 제2의 7·4공동성명을 꿈꿀 수 있다. 그러려면 김정은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각각 한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대북 대치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는 차별화된 대북성과를 거두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남북 비밀접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언제든 거둬들일 수도 있다. 비밀접촉이란 형식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원칙 없고 북한의 입맛에 맞추는 대북접근의 첫 단추로서의 막후채널 가동을 반대하는 것이란 측면에서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