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오른쪽)의 세 번째 부인 프란체스카 파스칼은 ‘수줍은 여성’에서 결혼 뒤 ‘깐깐한 여선생님’처럼 돌변했다. 지난 4월 12일 베를루스코니 부부가 이탈리아 바리에 있는 호텔 팰리스에 들어서는 모습. AP/연합뉴스
게다가 이탈리아 상원위원회가 베를루스코니의 상원의원직 박탈 여부를 두고 조만간 투표를 할 것으로 보이면서 더욱 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 상태. 만일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할 경우 면책특권을 잃게 되고, 그럴 경우 현재 계류된 수십 개의 재판에서 결코 유리할 수가 없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베를루스코니는 무려 30차례나 재판에 회부됐었지만 그때마다 상급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거나 혹은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단 한 차례도 실형 선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
고령의 나이를 감안해서, 그리고 지난 2006년 제정된 사면법에 따라 형량이 가택연금 1년 또는 사회봉사 1년으로 감형됐다고는 하지만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베를루스코니가 정치 후계자를 지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단지 ‘베를루스코니’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탈리아 유권자 가운데 약 15%가 지지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장녀인 마리나다. 자유국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리나가 베를루스코니의 뒤를 이어 당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코리에라 델라 세라>가 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마리나를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성공한 여성 사업가’라는 이미지가 정치 활동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또한 ‘신세대 보수 아이콘’으로 제격인 데다 베를루스코니의 다섯 자녀들 가운데 가장 베를루스코니를 닮았다는 점 역시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본인도 내심 장녀인 마리나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이어 나가길 바라고 있는 눈치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녀인 마리나는 베를루스코니가 가장 아끼는 자식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면에서 부친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야망이 차고 넘치는 데다 권력 지향적이며, 좌파에 대해 지독한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는 점 역시 똑같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려는 듯 지금까지 마리나는 부친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늘 열렬한 지원자가 되어 주곤 했다. 가령 미성년 성매수 및 권력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7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을 때에도 마리나는 줄곧 아버지를 두둔했다.
베를루스코니와 두 번째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
하지만 현재로선 마리나가 부친의 뒤를 이어 정계에 진출할 확률은 낮은 편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본인이 뜻이 없기 때문이다. 정계에 입문하라는 주변의 요청에도 그녀는 “정치에 뜻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정치의 리더십이란 건 상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또한 가장 최근이었던 지난 10월에는 “정치를 존중하지만 20년 넘게 일해 온 내 일과 회사를 좋아한다”면서 여전히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만일 내가 정치를 하면 아버지처럼 풍자만화의 주인공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라며 속내를 털어 놓았던 그녀는 정치인으로 변신할 경우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른다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나가 이렇게 뒤로 빼자 혹시 차녀인 바르바라가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문에 대해 바르바라는 “아니요, 사양하겠습니다”라는 명확한 의사 표현을 했다.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바르바라는 “정당에는 아버지의 정치적 사상을 공유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사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하다”며 정치에 몸담을 뜻이 없음을 밝혔다. 베를루스코니 역시 바르바라가 정치 후계자가 되기에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몬다도리’ 회장직을 두고 마리나와 신경전을 벌였던 바르바라는 베를루스코니가 두 번째 부인인 베로니카 라리오(57)와의 사이에서 낳은 3남매 가운데 첫째다. 2010년 축구클럽 AC 밀란 이사로 발탁된 후부터 구단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차기 회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파 잡지인 <리베로>는 ‘시스터 파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앞으로 베를루스코니의 두 딸, 즉 마리나와 바르바라의 파워가 더욱 막강해질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베를루스코니 가문의 실세는 두 딸이 아닌 세 번째 부인인 프란체스카 파스칼(28)이라고 수군대고 있다. 파스칼은 지난해 12월부터 베를루스코니의 연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지난 10월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려 현재 베를루스코니의 정식 아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장녀 마리나(왼쪽)와 차녀 바르바라.
하지만 파스칼의 진짜 모습, 즉 여장부다운 모습이 드러난 것은 결혼한 후부터였다. 다시 말해 ‘수줍은 연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깐깐한 여선생님’으로 변신했다는 것. 이에 둘 사이의 주도권이 이미 파스칼에게 넘어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샘이 아주 많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파스칼이 베를루스코니의 과거 여자친구들이나 혹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정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같은 이유에서 주기적으로 베를루스코니의 가방을 검사하고 있는 그녀는 혹시 베를루스코니가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내진 않았나 하는 염려에서 영수증을 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이 아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생활비 내역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그녀는 행여 고용인들이 베를루스코니를 이용하고 있진 않나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다. 가령 콩을 1㎏에 80유로(약 11만 원)나 주고 산 내역이나 베를루스코니가 생선을 전혀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생선을 구입한 내역을 보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파스칼이 그 후부터 시장 영수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어느덧 베를루스코니도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한편 베를루스코니의 과거 여자가 된 두 번째 부인인 라리오 역시 베를루스코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베를루스코니가 18세 여성 모델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난잡한 파티를 벌였던 사실을 들키자 이혼 소송을 제기했던 라리오는 당시 위자료로 한 달에 300만 유로(약 43억 원)씩 연 3600만 유로(약 517억 원)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이 요구를 거듭 거부했었던 베를루스코니는 1년 가까이 지루한 이혼 전쟁을 치른 끝에 최근 몬자법원으로부터 그나마 위자료 액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몬자법원은 베를루스코니에게 생활비로 평생 동안 매일 4만 6000유로(약 6600만 원)씩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매일 10만 유로(약 1억 4000만 원)에서 그나마 절반 가까이 줄어든 액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