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그간 대표팀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오고갔다. 하지만 언제나 굳건했고, 변화에 예외였던 포지션이 있다. 골키퍼다. 특히 한 번 정해지는 주전 자리는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정성룡(28·수원삼성)이 그랬다. 이운재(은퇴)와의 선의의 경쟁에서 승리한 그는 2010남아공월드컵 이후 거의 3년 넘도록 변함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켜왔다. 앞서 허정무(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조광래-최강희(현 전북현대 감독) 등 3명의 사령탑이 바뀌었고, 전술과 색채 역시 꾸준히 바뀌었어도 골키퍼에 대한 대표팀의 신뢰와 믿음은 굳건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마찬가지. 일부 얼굴은 바뀌기도 했지만 정성룡은 늘 ‘터줏대감’으로 자리했다. 그랬던 그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정성룡은 최근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다. 11월 A매치 2연전을 위해 대표팀 소집 때까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31경기에서 37골을 내줬다. 매 경기당 한 골 이상 계속 허용한 셈이다. 그 사이 후배들의 빠른 성장이 정성룡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승규(23·울산현대), 이범영(24·부산 아이파크) 등 경쟁자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진다.
많은 축구인들은 “어떤 골키퍼든 결국 실점을 한다. 정성룡의 경우, 실점하지 않아야 할 장면이 드물다. 어쩔 수 없이, 또 피치 못할 외부 상황에 의해 실점을 내준다”고 정성룡의 장점을 설명해왔다. 이는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안정감을 바탕으로 묵묵히 제 몫을 해준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과거 사례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여전히 필드에서 맹위를 떨쳐온 베테랑 수문장 김병지(전남 드래곤즈)는 자주 부각됐지만 2002한일월드컵 때 이운재에게 자리를 결국 내줬다. 그리고 이운재는 현저한 페이스 저하로 정성룡에게 내줬다. 소속팀도 그렇지만 대표팀 골키퍼는 주변 모두가 실점이다 싶은 장면을 막아내는 ‘슈퍼세이버’가 아닌, 안정적인 플레이에 무게를 둔다. 실점할 때 실점하더라도 막을 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승규, 이범영.
하지만 지금의 정성룡은 그렇지 않다. 이번 대표팀 소집 직전에 열린 11월 10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치명적인 실수는 전혀 ‘정성룡답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슛을 완전히 잡아내고도 착지 과정에서 볼을 놓쳐 자신의 골문에 흘려보내고 말았다. 사실상 골키퍼 자책골이었다.
축구계 일각에선 수년간 이렇다 할 경쟁이 없었던 게 지금의 위태로운 정성룡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정성룡은 “훈련도 꾸준히 열심히 했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답은 없다. 결국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기존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오롯이 선수 본인의 몫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외로운 포지션인 골키퍼, 그것도 진정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게 정성룡의 현주소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