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금남로에 2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날이 저물자 폭죽을 쏘아올렸다. 이종현 기자 | ||
대한민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꺾고 월드컵 4강이라는 역사적 쾌거를 일궈낸 지난 6월22일 광주 금남로. 홍명보의 슛이 그물을 가르는 순간, 거리에서 터져나온 함성은 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광주 전체, 아니 이 나라 전체가 온통 거대한 함성의 도가니일 뿐이었다. 벅찬 환희가 있었고, 감격의 포옹이 있었고, 뜨거운 눈물이 있었다.
22년 전 5ㆍ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피와 한이 생채기로 남아 있던 도시 광주. 그래서 이날 광주에서 맞은 승리와 화합의 물결은 더욱 눈부셨다. 영남도 호남도 없고, ‘대~한국민’만이 있던 그날의 광주에 다녀왔다.
16강 진출이라는 당초 목표를 이미 달성한 탓이었을까. 월드컵 8강전을 하루 앞둔 지난 6월21일 밤 광주의 표정에는 한결 여유가 넘쳤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로 가득찬 금남로와 충장로 거리는 마치 축제의 전야제를 방불케 했다.
날이 밝으면서 열기는 점차 고조됐다. 이날 광주에서는 길거리 응원을 위해 금남로 전남도청 앞, 상무시민공원, 첨단지구 쌍암공원 등 7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20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도청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붉은 옷의 시민들이 ‘오∼필승코리아’를 연호하며 모여들었다. 때마침 충장로에서는 승합차를 개조한 월드컵 홍보차량이 다섯 박자 ‘대∼한민국’을 외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오전 11시 무렵 기자는 장소를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겼다. 택시기사는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면 회사에 입금할 돈 9만원을 내 돈으로 내고 있다”며 “한국이 계속 이기는 바람에 그동안 생돈 36만원을 날렸지만 오늘도 오후 1시30분에 동료들과 모여 함께 응원하기로 했다”고 즐거워했다.
| ▲ ‘표구함’이라고 씌어진 모자를 쓰고 티켓을 찾아 다니는 팬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 ||
페이스페인팅과 사진촬영은 이제 경기장 바깥의 흔한 풍경. 브래지어와 핫팬츠만 걸친 아찔한 차림을 한 채 온몸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캐나다 여성은 이날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쏟아지는 사진촬영 요청에 그녀는 점점 대담한 포즈를 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승사자’ 컨셉트의 하얀 얼굴을 한 남자 2명의 복장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 모두는 이제 복장 자체가 응원이라는 묘미를 터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들이 ‘붉은악마 되기’를 열망했다는 것. 이날 수백 명의 외국인들은 붉은색 셔츠를 입고 붉은악마와 함께 ‘대∼한민국’ ‘오∼필승코리아’를 외치고 있었다. 자국팀의 유니폼을 입은 일부 외국인들 또한 ‘대∼한민국’을 외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경기장 입장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장면은 옥에 티였다. 한국인 암표상은 물론 외국인까지 가세한 이날의 암표전쟁은 유난히 극성스러웠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한솔씨(24ㆍ대학생)와 문종환씨(23ㆍ대학생)는 티켓을 확보한 것이 못내 자랑스러웠는지 티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서 왔다는 곽명주씨(45) 가족은 엄청나게 치솟은 암표 가격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돌아서야 했다. 대구에서 음반제작 및 도매업을 한다는 곽씨는 이날 부인 강영애씨(40)와 일곱 살 난 아들 희현군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 밖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된 암표 가격은 50만∼1백만원 선.
표 구하기에 실패한 곽씨는 기자에게 호주머니의 만원권 지폐 한묶음을 꺼내 보여줬다. 그는 “3등석 2장을 50만원에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곳을 찾았지만 두 배를 넘는 가격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뒤 “그냥 금남로에 가서 길거리 응원을 하고 이 돈으로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사먹겠다”며 아들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돌렸다.
|
||
| ▲ 수많은 ‘붉은’ 외국인들도 광주를 찾았다. 사진은 응원 군중 속에서 가장 돋보인 캐나다 여성. | ||
“아따, 광주꺼정 왔응께 이기고 가야허는디, 이태리 선수들헌티 너무 많이 맞아가꼬 지쳤구마잉.”
안타까움은 연장 7분 스페인 스트라이커 모리엔테스의 논스톱 터닝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올 때를 고비로 묘하게 반전됐다. 순간 이 장면을 지켜보던 길거리 응원단 곳곳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겼다”는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골대를 맞히면 진다’는 속설이 이번 대회에서는 유난히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개막전에서 프랑스가 세네갈을 맞아 그랬고 16강전에서 터키와 맞선 일본이 그랬다. 우리나라에게 0-1로 패한 뒤 보따리를 싼 포르투갈 역시 ‘골대 징크스’에 쓰러진 케이스.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낸 11명 불굴의 태극전사는 연장전을 포함해 1백20분 동안 계속된 혈투를 승부차기까지 몰고 갔다. 마침내 다가온 운명의 시간. 양팀은 먼저 3명씩의 키커가 나서 연속으로 그물을 갈랐다. 우리나라의 네 번째 키커 안정환이 등장했을 때, 지난 이탈리아전 그의 페널티킥 실축을 기억하는 관중들은 잠시 호흡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환은 침착하게 카시야스의 허를 찔렀다.
다음은 이날 양팀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 가운데 한 명인 호아킨. 하지만 어딘지 자신없어 보이던 그의 슛은 거미손 이운재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키커 홍명보의 슛만 성공하면 월드컵 4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오른발 인사이드로 강하게 차넣은 공은 골박스 상단을 때렸다. 1백20분간의 사투에 마침표를 찍는 감격적인 순간, 금남로에 모인 20만 인파는 일제히 “와∼”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너무나 벅찬 감격은 굳이 언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어림잡아 5분은 계속된 함성소리가 끝난 뒤 대형태극기가 나부꼈고, 다섯 박자 ‘대∼한민국’이 비로소 힘차게 다시 시작됐다.
금남로에서 33년째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는 노종택씨(63)는 “온 국민의 단합된 힘이 무등산 정기와 합쳐져 일궈낸 대한민국의 승리”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또 “5·18 때와 수는 비슷하지만 열기는 훨씬 더 뜨겁다”며 감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