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신신한 교회 신도였던 B 씨는 A 씨의 딱한 사연을 접하고 “불쌍한 성도”라며 살뜰히 보살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침 B 씨의 친정어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A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옆이라 A 씨의 식사를 챙기며 생활을 도와줄 수 있었다.
B 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요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봉사활동에 열중했다고 한다. B 씨는 A 씨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했다. 간경화을 앓고 있는지 몰랐던 A 씨를 병원에 데려가 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B 씨였다.
A 씨는 B 씨가 보살피던 초기만 하더라도 ‘멀쩡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경화에 걸린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기 시작하며 술을 가까이하면서 전화로 B 씨를 괴롭히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은 B 씨가 점점 심해지는 A 씨의 횡포에 ‘다시는 도움을 주러 찾아오지 않겠다’고 하자 A 씨가 B 씨를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B 씨의 가족들도 A 씨를 돌보는 일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A 씨가 또 다시 B 씨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고 B 씨는 A 씨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에도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A 씨는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없이 B 씨의 머리를 발로 폭행하기까지 했다.
B 씨 또한 A 씨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따끔하게 혼내고 A 씨가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이후 A 씨의 행방은 몇 년간 묘연했다.
몇 년 후 다시 돌아온 A 씨는 B 씨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A 씨의 행동은 변한 것이 없었다. B 씨의 차번호를 조회해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A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문 앞에는 뜯지도 않은 술병이 박스째로 쌓여있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11월 22일 오후 9시경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B 씨는 A 씨에게 술을 그만 마실 것을 충고했고 이것이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결국 A 씨는 B 씨를 둔기로 내려치고 부엌에 있는 칼로 28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부산 북부 경찰서 강력팀 관계자는 “처음에는 피의자가 ‘사소한 말다툼’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현장검증을 해보니 상황이 좀 달랐다”며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A 씨에게 B 씨가 계속 술을 마시면 부산대병원 알코올상담센터로 보내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격리 병동도 있다. 이에 A 씨가 격분한 나머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술을 자유롭게 즐기던 A 씨에게 B 씨의 알코올센터로 보내겠다는 발언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B 씨와 갈등 끝에 한 차례 집을 뛰쳐나갔다가 고생을 했던 터라 알코올센터로 보내질 경우 감금생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발적인 살인으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결국 A 씨는 자신을 4년간 돌봐 준 B 씨를 상대로 둔기로 내려친 후 부엌에 있던 흉기로 28차례나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A 씨는 아파트 경비실로 찾아가 “사람을 죽였다.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말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심지어 A 씨는 B 씨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당신 어머니를 죽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A 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에도 B 씨가 자신의 내연녀이고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현재 A 씨는 B 씨가 자신의 내연녀라고 주장한 다음 입을 다문 상태다. A 씨의 주장대로 ‘치정’에 의한 살인인지 우발적인 살인인지는 계속 수사 중이다. 경찰은 고의성 여부를 두고도 면밀하게 조사를 벌이고 있다.
A 씨는 현장검증에도 비교적 담담하게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판사 앞에서는 자신이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과 자수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3번에 걸쳐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보는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다고 한다. 현재 부산 북부 경찰서는 A 씨의 정신감정과 알코올중독에 관한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B 씨의 아들은 “일부 보도에 A 씨의 진술을 토대로 어머니가 내연녀로 알려졌는데 너무 화가 난다. 점점 심해지는 A 씨의 횡포에 어머니에게 보살피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최근 다시 A 씨를 돌보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