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은 연말까지 자기자본을 3조 원으로 맞추지 못하면 내년엔 한국형 IB 사업권을 반납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은숙 기자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수치를 보면, 대우증권이 3조 9730억 원, 삼성증권 3조 4494억 원, 우리투자증권이 3조 4589억 원으로 3조 원을 비교적 여유 있게 웃돌고 있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이 3조 696원으로 간신히 턱걸이를 했고, 현대증권은 2조 9551억 원으로 450억여 원 미달하고 있다. 415억 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이 기준 미달의 주범이다.
현대증권은 6월 말 자본총계도 2조 9421억 원으로 기준을 밑돌았지만 지난 10월 말 이뤄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승인 당시에는 2012회계연도 말 3조 42억 원을 기준으로 한 덕분에 자격을 인정받았다. 내년부터 결산기준이 3월 말→12월 말로 변경됨에 따라 2013회계연도는 올 12월 말로 끝난다. 따라서 연말까지 증자를 하든지, 흑자를 내든지 다시 자기자본을 3조 원으로 맞추지 못하면 내년에는 한국형 IB 사업권을 반납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시장법 77조의2 제4항은 ‘자기자본 3조 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증권이 그리 쉽게 증자를 하거나 흑자를 낼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증권은 5대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적자 기업의 증자에 주주들이 호락호락 응할 리 없다. 게다가 모기업인 현대그룹은 주력인 현대상선의 실적이 부진한 데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부터 계속 경영권을 지켜내기 위해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모그룹도 현대증권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현대증권은 지난 2011년 증자 때도 신주 발행가(주당 5000원)인 연 6.5%의 고배당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겨우 우선주를 발행, 5950억 원을 조달했다. 이 우선주 700만 주가 내년 4월 1일부터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다”며 “1700만 주인 보통주가 2400만 주로 늘어나는 것도 주가에 부담인데, 여기에 또 다시 증자를 한다면 주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 다른 네 곳의 증권사들은 안전할까? 현재까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증권보다 나은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증시 불황이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데다, 주요 자산운용처인 채권시장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무엇보다 2015년부터 콜자금 차입이 제한되고, 파생상품과 주식거래 등에도 세금이 부과되면 증권사들은 사상 최대의 경영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가장 싼 콜금리로 자금을 끌어와, 이보다 높은 금리인 채권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구조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각 증권사가 각자의 신용을 바탕으로 콜보다 비싼 금리로 자금을 빌려와 그 비용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안전한 국고채에만 투자해도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주식이나 고위험 채권에 투자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증권사의 한 임원은 “내년에는 어찌됐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 올해보다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올해 겨우겨우 적자를 면한 대형 증권사들도 내년에는 적자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일부 중소형사는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며 “현대증권이 다시 종합금융투자회사 요건을 갖추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