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30년 지기이자 법률대리인인 석진강 변호사(63)가 지난해 4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의 처지를 놓고 꺼냈던 말이다.
그러나 전 대우그룹 이사 A씨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미 대우사태가 심화되던 99년 7월말 해외에서 한 차례 자살을 기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인간 김우중’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접해 온 측근 중의 한 사람. A씨가 털어놓은, 김 전 회장의 자살 기도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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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안산 농장과 서울 방배동 집을 제외한 전 재산을 내놓은 뒤 김 전 회장은 “나는 어차피 경영권에서 욕심을 버린 지 오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자신은 이미 마음을 비웠다는 것.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일궈놓은 ‘세계경영’의 토대에 대해서만은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이 무렵 김 전 회장은 ‘(경영권을 넘겨줬다 해도) 우리가 일궈 놓은 세계 5백여 개의 사업장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살려둬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속내를 자주 토로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전 회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와의 대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해외 사업장도 대우 문제 아니냐”는 답변만 할 뿐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회사를 떠난 김 전 회장을 두고 “폭탄의 뇌관을 제거했다”고 표현했던 어느 고위 관료의 발언도 들려왔다.
혼자 냉가슴을 앓던 김 전 회장이 영국으로 떠난 것은 열흘 뒤인 7월 30일. 바로 전날 저녁 전경련 회장단 14명이 마련한 위로 모임에 참석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대우를 도와준 4대 그룹 회장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인사말을 남긴 뒤였다. A씨는 “이때 이미 김 전 회장의 마음 속에는 ‘결심’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가 전하는 김 전 회장의 자살기도 정황은 이렇다. 1999년 7월30일, 영국에 도착한 김 전 회장은 공항 근처 한 모텔에 숙소를 잡고 가까이 지내던 한 변호사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지금 대우 문제의 본질은 대우가 아니라 나를 죽이려는 거다. 나만 없어지면 대우도 살고 다른 경영진도 살 수 있다.”
이어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직접 관리해오던 해외 사업장에 대한 ‘사후(死後) 방안’을 밝히기 시작했다. 만류와 설득을 거듭하던 변호사는 김 전회장의 뜻을 꺾지 못하자 한국에 급히 ‘SOS’를 타전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대우그룹에서는 계열사 B사장이 부랴부랴 달려왔고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도 사람을 보내 설득작업에 나섰다.
김 전 회장은 B사장을 만나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며 자신의 굳은 결심을 전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말로 김 전 회장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잠깐만 (외국에서) 계시면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한국에) 오셔서 대우나 대우자동차 정도의 회사 1~2개 맡아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사법처리는 없을 겁니다. 잠시 동안만 밖에 계시면 저희가 일을 마무리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김 전 회장은 뜻을 꺾었다. 대화는 잘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수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8월 초. 김 전 회장은 중국에서 이기호 당시 경제수석을 만났고 이 수석의 권유에 따라 8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만찬 정ㆍ재계 간담회에 5대 그룹 총수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김 전 회장에게 “구조조정과정에서 도와준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 전 회장은 “국가에 큰 부담이 돼 면목이 없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8월26일, 한 달 전보다 더 가혹한 상황이 김 전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방침이 전격 발표된 것이다.
“워크아웃을 할 경우 미리 말해주겠다”던 고위 책임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크아웃 발표 직전에야 대우 계열사 사장 두 사람이 이기호 경제수석을 만났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 때에도 김 전 회장은 “잠깐만 나가 있다 돌아오시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듣고 중국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우그룹의 한 전직 고위임원은 “김 전 회장은 지금까지도 대우그룹 워크아웃 이후 ‘밖에 나가 계시라’는 정부측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것을 가장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 찍혔지만 김 전 회장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대우측 임원의 주장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며 “청와대가 직접 나서 김 전 회장을 출국시키고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밝혔다.
아무튼 김 전 회장이 외국으로 떠난 뒤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금융감독원은 대우그룹 회계법인의 특별 감리를 시작했고 조사는 김 전 회장의 자금유용부분까지 급속도로 번졌다. 당시 김 전 회장이 맛봤던 좌절감과 배신감은 결국 그를 더 깊은 병마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소식을 접하고 있는 한 측근 인사는 “김 전 회장이 만성적인 고혈압에 장 협착증까지 겹쳐 현재 독일의 한 병원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며 “장 협착증 치료를 위한 수술을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