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등성이 철조망의 출입구가 열려 있었다. | ||
다만 2검문소 입구에 손바닥이 그려진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는 낯선 통행금지 표지판과 바리케이드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발길을 막았다. 또 2검문소 철문 왼쪽 상단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상하좌우로 작동하고 있었다.
청남대 관계자와 방문객의 유일한 의사 통로는 철문 오른쪽에 붙어 있는 인터폰뿐. 기자는 청남대 관계자와 인터폰 연락을 시도했다. 우선 신분을 밝히고 청남대 취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비대원은 인터폰을 통해 “상부에서 아무런 지침도 없었다”며 취재 불가방침을 알렸다. 전날의 대통령 지시가 아직 청남대까지 ‘공식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 취재진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하자 경비대원은 “경비 담당관이 바쁜 일 때문에 연락할 수 없다”고만 짧게 답했다.
청남대는 국내 인공호수 가운데 세 번째로 큰 대청호와 울창한 수목에 둘러싸인 천혜 절경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서 회남면 방향으로 뻗은 509번지방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15분 정도 달려가야 한다. 청남대는 보안을 이유로 지도에도 표시돼 있지 않다. 도로 이정표도 없다. 처음 찾아가는 이들은 그야말로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도 3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청남대 본관에 갈 수 있다. 제1검문소는 문민정부 시절 개방했다. 현재는 1검문소에서 3.5km 더 들어간 제2검문소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1검문소에서 2검문소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 1급수라 불러도 무방한 대청호와 도로 양 옆의 잘 조성된 가로수가 저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할 정도.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지시가 발표된 다음날 2검문소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스컴을 통해 청남대가 개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성급한’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찾아온 것. 하지만 청남대는 여전히 ‘개방 불가 방침’에 변함이 없었다.
청남대와 가까운 청주에서 친구와 함께 온 이아무개씨(26)는 “대통령이 청남대를 개방한다고 해서 구경왔는데 철문이 닫혀 있어 돌아가는 길”이라며 아쉬워했다. 대전에서 온 권아무개씨(48)도 서울서 내려온 친척 4명과 함께 구경하러 왔다가 헛걸음을 했다. 권씨는 “TV에서 개방한다고 해서 친척들과 함께 왔는데, 개방 발표만 해놓고 문을 닫아놓은 이유가 뭐냐”며 불만을 표했다.
청남대가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 대청호에는 민간인의 배가 뜰 수 없다. 항공기도 청남대를 중심으로 반경 4.8km, 고도 3km까지 비행할 수 없다. 철저한 보안 때문이다. 문의면에 사는 엄경진씨(45)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청남대 맞은 편에 있는 현암사에서 청남대 지붕이 보인다는 이유로 절을 없애려 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문의면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청남대의 현재 경비병력은 5개 소대 1백여 명. 여기에 청남대 주변에 있는 군부대에서 함께 경비를 서고 있다고. 경찰도 하루 세 차례 도로 순찰을 하고 있으며, 순찰함도 두 차례 정도 대청호를 돌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청남대를 ‘철옹성’에 빗대고 있다. 주민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청남대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대부분 모르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철옹성’으로 비유되는 청남대 경비가 예상과는 달리 허술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굳게 닫힌 제2검문소와 연결된 철조망을 따라 산등성이로 오르던 중 작은 철조망 출입문 하나를 발견했다. 철문을 가볍게 흔들자 문이 열렸다. 자물통을 열쇠로 잠그지 않았던 것. 취재진은 그 문을 통과했다. 노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발언에 따라 ‘철통경비’의 실효성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
산등성이를 타고 제3검문소 쪽으로 향했다. 2검문소에서 3검문소까지의 거리는 약 3백m. 도로가 아니어서 가시덤불인 산길을 따라가다 보니 3검문소와 연결된 철조망이 발길을 또 막았다.
이곳에선 청남대 본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초록색 지붕인 청남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가려져 얼른 보아서는 식별하기 쉽지 않았다. 취재진은 제3검문소 철조망에 막혀 더 이상 청남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제2관문 철조망 출입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청남대 경비대장인 배병국 중령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배 중령은 “그곳(제2검문소 철조망 문)은 우리 청남대 경비대 소관이 아니라 (청남대 인근에 있는) 군부대의 경비책임구역”이라며 “군부대가 작전 활동을 하려고 그 문을 열었다가 닫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