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32년 전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았다는 파주경찰서의 전화에 이종규 씨(70)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에는 경찰이라는 것도 거짓말만 같았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 결과 아버지의 DNA와 잃어버렸던 아들 이성남 씨(40)의 DNA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결과 99.9%가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경찰의 설명에 점차 아버지 이 씨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32년 만에 아들을 찾은 이종규 씨 가족. 사진제공=파주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 사이 아들은 서울에 있는 교남재단의 지적장애인거주시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이 씨는 재단이 확장되면서 2010년 파주에 위치한 교남재단 교남 어유지 동산으로 거취를 옮겼다. 교남 어유지 동산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농업을 주 업종으로 하여 직업재활을 하는 곳이었다. 이 씨 또한 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하기까지 이곳에서 직업재활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 사이 30대였던 아버지 이 씨는 백발이 성성한 70대가 되었고, 아들은 장성한 40대가 되었다.
그러던 2004년 경찰청이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DNA 감식을 활용한 미아찾기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자신의 DNA 샘플을 제출하면 경찰이 이를 국과수 유전자센터로 보내 무연고 아동의 DNA와 비교 분석한 뒤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이다. 처음에 무연고 아동(18세 미만)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DNA 감식기법은 점차 정신지체장애인과 치매 노인으로 확대됐다. 이에 아들 이 씨의 DNA도 분기별로 실시되는 보호시설 무연고자 DNA 채취 작업에 따라 2005년 최초로 제출됐다.
2013년 7월 어느 날, 이 씨의 아버지 또한 TV를 보다 DNA 감식으로 실종자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당시 후두암 수술로 몸을 회복 중이었던 이 씨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천 경찰서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날 DNA등록을 마친 아버지 이 씨는 다시 한 번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게 됐다.
아버지 이 씨가 DNA감식을 요청한 지 3개월이 지난 10월, 국과수로부터 DNA가 일치한다는 소식이 경찰서에 전해졌다. 파주경찰서는 국과수의 요청에 따라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위해 지난 10월 다시 한 번 아들 이 씨의 DNA를 채취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지난 11월 29일 파주경찰서는 아버지 이 씨와 아들 이 씨의 DNA가 99.9%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다음 날인 11월 30일 아침 9시, 32년 만에 아들을 만난 아버지 이 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이렇게 아들을 찾게 됐다”며 눈물을 쏟았다. 실종전단지의 사진은 어렸을 적 모습이라 현재의 모습과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강수자 씨(65)를 모시고 온 이 씨의 첫째 형과 둘째 형은 동생을 한눈에 알아봤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말 내 아들이 성남이가 맞느냐”며 어렸을 적 발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 이 씨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가족과 만난 이 씨는 어릴 적 자신의 집이 어딘지, 어떻게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씨는 형과 함께 종종 아버지의 선박 회사를 찾았던 것과 아버지가 형에게 하나를 가르치면 금방 배운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에게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최초로 전한 파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직원은 “DNA 감식으로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온 가족들이 서로 이해하고 좀 더 친밀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자 발생건수는 9만 5832건에 이른다. 수많은 실종자 사이에서 가족을 찾는 경우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동지문등록과 DNA 등록을 통해 조금씩 가족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은 실마리와 희망에 기대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기적이 온다는 것이 경찰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