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4관왕을 거머쥐고 2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박병호. 겨울에도 훈련을 거르지 않는 노력형 스타다. 박은숙 기자 espsrk@ilyo.co.kr
–최근 아내와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그런데 구단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행 가기 전에도 야구장에 나와 하루 5시간씩 훈련을 했다고 하던데, 이쯤 되면 훈련 중독 아닌가.
“포스트시즌을 치르기 전에 아내와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일정을 한국시리즈 이후로 잡았다. 그런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동안 마냥 쉬고 있기가 뭐해서 야구장으로 나온 것이다. 여행 다녀오자마자 시상식 때문에 여기저기 ‘외출’이 잦았지만, 그래도 훈련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겨울에 이렇게 운동을 해줘야 스프링캠프 때 몸이 제대로 올라온다. 훈련 중독까지는 아니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해두자.”
―지난해 ‘박병호 열풍’을 일으키며 프로야구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올해도 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작년에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반짝스타’였다. LG에서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냈고, 넥센에서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던 부분들이 모여 지난해 방점을 찍었는데, 야구계에선 그런 내가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한 해 저렇게 반짝하고 말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게 나를 크게 자극시켰다. 그래서 지난해 시상식 때마다 ‘반짝스타가 되지 않겠다’라고 신념처럼 반복해서 수상 소감을 말하곤 했었다. 올해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고, 2년 연속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이룬 기록과 성적들이라 더더욱 기쁘다. 무엇보다 넥센이 창단 후 처음으로 4강에 올랐고(정규리그 3위), 포스트시즌도 경험하는 속에서 개인성적도 챙긴 탓에 그 기쁨이 배가되는 것 같다.”
―넥센 팬들은 박병호를 ‘목동 교주’로 부른다. 야구팬들은 박병호를 가리켜 ‘만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선수라고 설명한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내가 ‘목동 교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팬들이 나한테 다양한 소원을 얘기하더라. 승진하게 해달라, 시험 잘 보게 해달라, 와이프 임신에 성공하게 해달라 등등…. 내가 뭐라고 그런 중요한 소원을 말하는지 몰라도,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만화 같은 삶?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2005년부터 눈물 콧물 흘리며 고생을 했고, 노력했고, 기회를 잡았던 부분이 홈런왕 박병호로 이어졌다. 난 천재형이 아니다. 노력형이다. 그 노력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37개의 홈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은 어느 것인가.
“8월 28일인가? 잠실구장에서 LG와의 경기가 벌어졌는데 팀이 2-3으로 끌려가던 8회 1사 2루 상황에서 LG의 세 번째 투수로 나온 이동현 선배를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그 홈런으로 최정(SK)을 제치고 홈런부문 단독 1위로 뛰어 올랐는데, 문제는 동현이 형이었다. 동현이 형은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LG와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는 중요한 순간에 역전홈런이 터져 형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다음날 동현이 형이 한 대 때려서 피하지 않고 맞아줬다(웃음). 가장 잊지 못할 홈런은 오승환 선배를 상대로 생애 첫 홈런을 터트렸을 때다. 그동안 오승환 선배한테는 안타 한 개도 치지 못했다.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헛방망이질을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첫 안타가 연장전 역전 홈런이 되면서 짜릿한 기쁨을 만끽했다. 올 시즌 오승환 선배에게 홈런 1개 포함, 안타 2개를 때렸다. 지난해까지 안타가 하나도 없었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이제 그 선배의 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일본으로 떠나신단다. 많이 아쉽다(웃음).”
―올 시즌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경험해 봤다. 그 소감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떨리더라. 2차전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선수들의 기 싸움이 굉장했다. 득점 하나, 안타 한 개에 정규시즌에선 볼 수 없는 오버 액션이 난무했다. 재미있었고, 신기하기도 했었고…. 단기전에서 심리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년에 다시 가을야구에 초대를 받는다면 심리전에서만큼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박병호는 올 시즌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염경엽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1, 2차전에선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이어간 반면에 3, 4차전에는 투수와의 심리전에서 자꾸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 ‘나랑 승부하려고 그러나?’라는 생각이, 볼이 들어오면 ‘날 거르려고 하는 건가?’하면서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공을 맞히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부진의 늪을 벗어나고자 마지막 경기인 5차전에 다부진 각오로 임했는데, 계속 힘든 상황이 반복되다가 9회말 2아웃 스리런 홈런으로 조금 ‘밥값’을 해냈다. 야구하면서 그런 감동은 처음 느껴봤다. 연장까지 가서 패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배운 게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연봉 재계약이 남았다. 최근 강정호가 작년보다 1억 2000만 원 오른 4억 2000만 원에 사인했던 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더라.
“지난해 연봉 계약을 맺을 때 구단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사인을 했다. 6200만 원의 연봉을 받던 나에게 2억 2000만 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올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연봉 고과 1위인 만큼 구단에서 ‘알아서’ 적정 액수를 제시해주리라 믿는다. 설령 그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난 바로 사인할 것이다. 그게 구단과 내가 갖고 있는 신뢰라고 본다.”
박병호는 인터뷰 말미에 프로 선수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달지 못했던 태극마크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동안 국가대표 1루수 자리엔 이승엽, 이대호, 김태균 등 쟁쟁한 선배들이 포진해 있던 터라 박병호로선 지난해 정규리그 MVP를 받고도 WBC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었다. 그 한을 오는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꼭 풀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가능할 수밖에 없는 게 이승엽은 이미 대표팀 은퇴를 밝힌 상태이고, 일본에서 뛰는 이대호는 시즌 중이라 대표팀에 합류할 수가 없다. 김태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박병호가 지금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대표팀 합류는 당연한 수순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박병호가 이런 말을 던졌다. 최근 시상식장 순회를 하면서 같이 순회 중인 류현진과의 만남에 대한 ‘느낌표’였다.
“류현진 선수랑 평소에 친하지 않았다. 별로 얘기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그 선수의 경기를 집중해서 봤다. 와, 정말 잘하더라. 현진이랑 같이 야구를 했다는 게 뿌듯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 시상식장에서 만났을 때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됐고, TV를 통해 가졌던 궁금증이 많아 현진이랑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컨택 능력이었다. 그런데 현진이가 말하길,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 비해 컨택 능력은 훨씬 뛰어난 편이라고 하더라. 농담 삼아 나한테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라고 하던데, 내가 이제 겨우 풀타임 2년차라 FA가 되려면…, 휴, 솔직히 계산이 안 된다(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