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에 열린 한국과 러시아의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드리블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얽히고설킨 조 편성
한국 못지않게 벨기에-러시아-알제리 모두 긍정적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대개가 “흥미롭다”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렇듯 H조를 둘러싼 생각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꼭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국제 축구계에서는 한국을 그리 강한 상대로 보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한국의 상대국들에게 H조는 최상의 그룹(Group)이라는 의미다. 한국이 세계 최강 스페인과 ‘전차군단’ 독일, 개최국이자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피한 대신 벨기에를 만나게 돼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벨기에는 한국을 만나 훨씬 즐겁다(?)는 의미다. 벨기에 사령탑인 마르크 빌모츠 감독이 “일본보다 한국은 한 수 아래”라고 평가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내 축구계 일각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꼬이고 꼬이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심지어 모든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 추첨이 끝난 뒤 홍 감독은 “월드컵에서 쉬운 조 편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낙관해서도 안 된다. 월드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건 모두에 동등한 기회가 열려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생각도 필요 없지만 마냥 낙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몇몇 축구인들도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 쉽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큰 위기”라고 했다. 한 유력 축구인은 “겉으로 보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라는 표현이 맞다. 어차피 유럽 2개국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면 솔직히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만나는 것보다 벨기에와 러시아를 만나는 편이 좋은 건 틀림없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되는 조 편성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자칫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쉬운 조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냉정한 평가를 했다.
# 선례에서 찾은 전략
3년 전 남아공월드컵의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당시 한국은 유럽의 그리스,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를 만났다. 낙관론이 좀 더 우세하긴 했어도 누가 봐도 쉬운 조 편성은 아니었다. 그리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한국은 일단 그리스를 잡고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최소 승점 1 이상을 확보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래서 그리스와 첫 경기에 총력을 기울인 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썼다. 결국 마지막 나이지리아와 비기면서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와 2차전을 통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브라질월드컵은 또 다르다. 가장 강한 상대와 맨 마지막에 맞붙고,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상대들과 1~2차전을 치러야 한다. 먼저 승점을 확보한 뒤 마지막으로 벨기에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결국 남아공 대회 때처럼 한 걸음 멈춰 한숨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월드컵 조추첨 결과 한국은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함께 H조에 편성됐다. AP/연합뉴스
이유가 있다. 일단 토너먼트 라운드 진입에 올인하는 한국과 달리 벨기에는 보다 높은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똑같이 “16강에 오르는 게 1차 목표”라고 해도 속내는 다르다. 사실 축구 강호들은 대회를 진행하면서 꾸준히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해왔다. 스페인이 지난 대회 정상을 밟았지만 정작 조별리그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가 가장 좋은 것일까. 당연하지만 일단 ‘지지 않는’ 경기를 해야 한다. 죄다 비겨버리는 3무가 아니라면, 2승1패보다 1승2무가 낫다는 건 충분히 일리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은 2승1패를 하고도 골 득실에서 밀려 예선 탈락의 좌절을 겪은 바 있다.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러시아와 알제리를 상대로 최소 승점 4를 따낸 뒤 벨기에와 무승부를 거두면 물고 물리다 2승1패의 성적으로도 탈락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어찌됐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 추첨이 이제 막 끝났을 뿐인데 한국 이외에도 모든 국가들은 정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불과 반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월드컵,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