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대구는 나란히 클래식 정규리그 13, 14위로 일찌감치 강등을 확정지었고, 강원은 올 시즌 챌린지 우승팀인 상주 상무와 승강 플레이오프(PO)에서 패해 결국 고배를 들었다. 한때 ‘축구특별시’의 닉네임까지 얻었던 대전과 강원도 축구 열기를 뜨겁게 지핀 강원이 강등의 아픔을 채 씻기도 전에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축구팬들을 더욱 아프게 한다.
대전시티즌 선수들이 2013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하지만 1부 리그 때와 2부 리그 때의 상황이 같을 리는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 클럽의 운영이 비슷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벌써 강등으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대개 우울한 소식이다. 대구와 강원은 이미 감독들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대전만이 조진호 감독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들은 시즌 중 소방수로 긴급 투입됐지만 결과적으로 제대로 진화하지 못했다. 시즌 막판 선전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평가가 불가피했다. 그래서인지, 대전은 조 대행의 ‘대행’ 꼬리표를 그대로 놔뒀다. 정식으로 지휘봉을 맡기는 데 부담을 느꼈다. ‘감독’과 ‘감독대행’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힘이 온전히 실리지 않은 선장이 선수들에게 100% 충성을 강요할 순 없다. 대전은 이를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대전과 대구는 구단 수뇌부까지 흔들렸다. 대전은 12월 초 김세환 대전시생활체육회 사무처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강등의 책임을 지고 퇴진한 전종구 사장의 후임이다. 대구도 내년 1월이면 임기가 종료되는 김재하 사장이 자진 사임 형식으로 구단을 떠나기로 했다. 강등이 결정된 뒤 사퇴를 선언한 석광재 사무국장의 사표 수리에 이어, 운영팀장, 홍보팀장, 경영지원팀장이 모두 사직하게 됐다. 강원도 프런트 재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소문이다.
이렇듯 구단 프런트 총책과 선수단 수장이 거의 동시에 빠졌는데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 없다. 2부 리그에는 당연히 2부 리그에 맞는 처우가 뒤따른다. 정도의 차이일 뿐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다.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은 분명 한정돼 있다. 기업 구단들조차 좀처럼 돈을 쓰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마당에 시와 도의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는 도시민구단들은 더욱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 프로 스포츠는 자금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돈이 없으면 곧 전력 하락이다. 선수들의 이탈은 당연한 수순이다. 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데 잔류할 리는 없다. 예전과 달리, 팀에 대한 선수들의 충성도는 일부 고참을 제외하면 눈 씻고 찾기 어렵다는 게 많은 축구인들의 설명이다. 이런 경우 선수들을 임대 형식으로 수급할 수 있는 경찰축구단이나 상주가 부러울 따름이다. 매년 시즌 말미에 한꺼번에 전역자가 발생하지만 꾸준히 A급 선수들을 수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써 협찬 기업들의 발 빼기가 진행 중이다. “1부 리그가 아니라 후원 효과를 볼 수 없다. 어떻게 2부 리그에 똑같이 스폰서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지역 기업체 대표이사의 냉정한 말에 모 구단 관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예상했지만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혹독한 겨울나기다. 지자체 차원의 보조금도 삭감된다. 대구는 올해 초 시로부터 받은 약 30억 원의 보조금을 포함해 100억 원 이하 규모의 운영비를 사용했지만 내년은 꿈도 꿀 수 없다. 대전 역시 대전시의회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 올해 40억 원을 받았던 것이 내년이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여기서 일찌감치 강등의 참담함을 겪었던 광주의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1부 리그 시절, 90억 원가량의 운영비를 썼던 광주는 올해는 규모를 80억 원대로 줄였다. 당연히 돌아온 건 승격 실패. 최선을 다했지만 핵심 선수들의 이탈 공백으로 인해 뚜렷한 한계에 부딪혔다. 일각에서는 “광주가 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은 게 소득”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도시민구단들이 그토록 강등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자칫 팀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도 없다. 현장의 많은 축구인들은 “강등 1년 내 승부를 내지 못하면 계속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영원히 승격 못하는 그저 그런 팀으로 남을지 아니면 도전하는 진짜 팀이 될지는 강등 다음 시즌에 결정 된다”고 입을 모았다. 어쩌면 2년째 2부 리그에 머물게 된 광주한테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실질적으로 절반의 승격 기회에 불과했기에 2014시즌이 진정한 승부가 될 공산이 크다.
일본 J2리그(2부) 감바 오사카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전통의 J리그 명문 클럽으로 작년 말 충격의 강등이 확정된 직후 감바 오사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지역 스폰서와 선수단 설득이었다. 구단 수뇌부의 발로 뛰는 노력에 감동한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동결된 연봉에도 팀 잔류를 선언했고 결국 내년 시즌 승격을 일궜다. 물론 전체 운영비는 줄였다. 그럼에도 선수단에 들이는 비용은 감소폭을 최소화시켰다.
한일 축구 사정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는 “감바 오사카는 가장 건강한 1~2부 리그 운영 체제를 확인시켜준 경우다. 운영비의 적정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또 합리적인 경영을 한다면 ‘K리그판 감바 오사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강등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도 “일본이 지역 색이 강한 국가이지만 정치적인 입김이 일개 축구팀에까지 미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축구단을 오직 시민을 위해 운영하려고 애쓴다. 측근 자리 챙겨주기 혹은 일감 몰아주기 등을 위해 팀을 운영하는 경우는 없다. K리그 도시민구단, 특히 강등 팀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라고 꼬집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