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난 여성들과 종종 잠자리를 가지던 선 씨는 갑자기 성관계를 맺는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위험한 생각은 동영상을 남겨야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지만 몰래 영상을 촬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선 씨는 온갖 방법을 궁리한 끝에 일명 ‘스파이캠’이라 불리는 안경형 카메라를 구입하고야 말았다.
영화에서나 쓰이는 줄만 알았던 몰래카메라였지만 현실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 ‘몰래카메라’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각양각색의 물건이 우르르 쏟아졌는데 판매자들도 “절대 들키지 않는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둘만의 추억을 남겨보라”는 등의 홍보글로 구매를 부추기고 있었다.
2011년 5월 선 씨 역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20만 원짜리 안경형 카메라를 구입해 곧장 성능 테스트를 실시했다. 처음에는 조건만남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했던 선 씨는 이후 성매매 업소에도 직접 찾아가 촬영을 시도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일반 안경처럼 끼고 있기만 하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기에 ‘몰카’ 자체를 찍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부분 조명이 꺼진 모텔 방에서 촬영하는 탓에 화질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영상 자체도 자주 흔들렸다. 또한 전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안경을 착용했다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었다.
영상을 볼 때마다 뛰어난 화질을 갈망했던 선 씨는 지난 8월 종전과 같은 안경형 카메라이지만 성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는 38만 원짜리 스파이캠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선 씨를 만족시킬 만한 수준으로 영상을 찍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안경형 카메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 선 씨는 결국 안정적으로 전체 화면을 찍을 수 있는 자동차 리모컨형 카메라까지 손을 뻗쳤다.
한 달 사이 구매한 두 개의 스파이캠으로 무장한 선 씨는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들과의 만남에 나섰다. 한 번은 성관계 도중 카메라가 놓인 뒤쪽 탁자를 자꾸 바라보는 선 씨의 부자연스러운 행동 때문에 몰카 촬영을 들키는 아찔한 순간도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선 아무개 씨가 조건만남 여성과 성관계를 하며 몰래 동영상을 촬영했다. 사진은 범행에 사용된 안경형 카메라 ‘스파이캠’(위)과 자동차 리모컨형 카메라.
편집을 거쳐 공개된 영상은 총 9편으로 편당 약 1GB(1시간 분량)에 달했다. 단순히 성관계 장면만 올린 것이 아니라 멀리서 걸어오는 여성의 모습부터 모텔로 이동하는 장면, 헤어지는 순간까지 담은 탓이었다. 선 씨가 올린 영상을 보면 조건만남에 응한 한 여성이 “사진이랑 똑같으시네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부터 숙박업소에서 샤워를 마친 뒤 나오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하지만 선 씨는 생각만큼 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 ‘최초 유포영상’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포함시켜 네티즌들을 유혹했지만 선 씨가 범행기간 벌어들인 돈은 고작 4000원에 불과했다. 웹하드 운영 구조상 영상을 올린 이용자에게는 전체 수익의 20%만 돌아가는 데다 영상을 내려 받은 네티즌들이 순식간에 다시 웹하드에 올려버려 ‘최초’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자 했던 선 씨의 행동은 인터넷 음란물 단속을 벌이던 경찰에게 꼬리를 잡히는 결과만 가져다줬다.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안경 등에 달린 카메라로 여성들과의 성행위 장면을 촬영해 유포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로 선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조사 결과 선 씨는 이미 절도 등 전과 4범인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의 컴퓨터에서는 음란동영상 수십 편도 발견됐다. 선 씨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촬영해 혼자 보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이를 알고 웹하드에 올리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해 동영상을 유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의심을 못하다 수사 중 인터넷 영상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한 피해여성은 선 씨가 사진 찍는 게 취미라고 말해서 그런 줄만 알았지 (촬영은)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며 “추가 음란물을 찾는 데 주력하는 한편 또 다른 범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DNA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고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경 사나이’ 선 씨의 손에는 고작 4000원 지폐와 성범죄자라는 낙인만 남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