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는 “장관에 여성 인사가 많이 발탁된 것은 긍정적이나 행정부처 내부 실상을 알고보면 아직도 멀었다. 차관은 물론, 실무급인 실·국장 중에 여성 인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 대표의 말을 새겨보면 그동안 정부 부처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실·국장급에 여성 인재는 거의 키워지지 않았다는 것. 사실 부처를 대표하는 사람은 장관이지만, 정책을 이끌어가는 야전사령관은 실·국장들이다. 실·국장급은 바로 1·2급 공무원. 이들을 가리켜 ‘고위 공무원’이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 ||
실제 각 행정부처의 실세는 정치권 인사로 몇개월 단명직에 머무는 장·차관 보다는 부처의 ‘터줏대감’격인 1·2급 공무원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1급은 ‘공무원의 꽃’으로 불린다.
공무원들의 희망봉으로 여겨지던 1급 공무원들이 요즘 불안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파격인사, 퇴출대상 1호로 1급 공무원들이 지목된 때문이다. 부러움의 대상에서 위기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1급 공무원은 정찬용 인사보좌관의 말대로 ‘공무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 위치’. 1급은 각 행정부처별로 많게는 12석(행자부)에서부터 적게는 3석(국세청 등)까지 부처별로 차이가 있다.
1급은 공무원 직급상 장·차관에 이어 3위격. 차관보를 비롯해 부처내 최고참 1급이 주로 맡는 기획관리실장이 대표적인 1급 공무원으로 꼽힌다.
현재 1급 공무원은 일반직(약 1백25명)과 별정직(약 66명)을 합쳐 대략 1백90명 정도. 1급이 2급 이하 공무원들과 엄격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국가공무원법 제68조에 잘 나와 있다.
현행법상 공무원의 신분에 대해 ‘불법행위나 형의 선고 등의 사유가 없는 한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해임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의 말미에 ‘단 1급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고 명시된 단서내용이 그것이다.
1급 공무원은 그 신분 보장이 안될 만큼 정치적인 자리로도 통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 태풍은 어김없이 1급 공무원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1급 공무원은 대부분 행정고시 합격자 중에서 나온다. 전체 행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약 20% 정도가 1급까지 오른다. 동기생 중 5대 1의 경쟁률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7급이나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서 1급까지 오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약 25~30년 정도 근무해야 1급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정설. 따라서 현재 1급 공무원의 평균 연령대는 50대 중반이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약 4백만~5백만원 선이다.
1급 공무원의 대다수는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 중반이다. 그러나 정치적 외풍에 의해 밀려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지금껏 1급 인사가 큰 불만없이 이뤄져온 배경에는 대부분 현업에서 퇴직한 뒤에도 정부 산하 공기업 등에 옮겨갈 수 있는 자리 보장을 받았기 때문.
1급 출신 중 40% 이상은 정부 산하기관과 단체로 ‘영전(?)’되는 것이 관례였다. 특히 경제부처의 경우는 거의 1백%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인사들도 대기업 등에 의해 대부분 스카우트된다. 특히 일부 대기업의 사외이사는 심각한 구인난을 겪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낙하산 인사’에 대한 일선 기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면직되는 1급 공무원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실제 최근 주주총회가 잇따라 열리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은행업계에서는 “재경부 등 행정부처의 퇴직 고급 공무원들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는 관행을 더이상 두고보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노회하다는 이유로 신정부에서조차 1급 공무원 청산 인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이래저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수십년간 공직자로 봉사해온 1급 공무원들의 근심과 위기의식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