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은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횡령·배임액수 산정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해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4월 15일 항소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날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한 것은 한화석유화학이 부실계열사에 전남 여수시 소호동 소재 부동산을 저가 매각하는 데 관여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 부분이다. 당초 배임액수를 293억 원에서 157억 원으로 변경한 공소장을 제출했다. 대법원에서 사건이 파기환송돼 서울고등법원에서 사건을 재심리하는 동안 부동산 감정평가를 다시 진행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회장이 계열사인 한화석유화학 소유의 시가 713억 원짜리 여수시 소호동 부동산을 부실계열사인 한유통에 공시지가 수준으로 팔도록 지시해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문제의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함에 따라 일단 배임죄 액수는 당초 액수에서 136억 원이 줄어들게 됐다. 소호동 땅의 감정평가액이 실제로 판 금액인 441억 원에 근접한다면 이 부분 배임 혐의에 대해 아예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김 회장의 배임액수가 깎이는 부분은 더 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한화그룹이 계열사 채무를 부당하게 지급보증한 행위에 대해 추가 지급보증행위가 있더라도 먼저 이뤄진 것과 별도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 논리에 따라 배임액에서 빠지는 추가 지급보증액은 140억 원이다. 소호동 땅 293억 원이 무죄가 나오고 추가 지급보증액 140억 원이 빠지면 당초 2심에서 인정된 횡령·배임액에서 산술적으로는 433여억 원이 줄어든다.
김 회장 측이 이날 465억 원을 추가로 공탁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 회장은 이미 1130억 원을 피해회복을 위해 공탁금으로 내놓은 바 있다. 2심이 인정한 김 회장의 범죄액수 1797억 원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거의 원상회복이 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 회장을 변호했던 한 변호사는 “재산범죄에서 피해회복을 한다는 것은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감형사유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많다. 대법원이 만든 ‘양형기준’ 때문이다. 양형기준은 판사마다 형량이 제각각인 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정 범죄군에 대해 권고형량을 정한 것으로, 판사들은 양형기준을 벗어나게 되면 그 이유를 판결문에 기재해야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판사들이 양형기준을 준수하는 비율은 9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에게 적용되는 횡령·배임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2009년에 만들어졌다. 이 기준에 따르면 피해액에 300억 원 이상인 경우 기본 권고형량이 징역 5~8년이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3년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횡령·배임액이 1000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김 회장은 최소 징역 5년형을 받아야 하므로, 애초에 집행유예형이 불가능했다.
서울 중구 장교동에 위치한 한화 빌딩. 최준필 기자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배임액수가 430억여 원 정도 줄어들어도 여전히 1000억 원이 넘는 액수가 피해액으로 인정된다”며 “양형기준이 300억 원 이상이면 하한을 징역 5년으로 잡고 있는 이상 실형을 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도 “김 회장이 추가로 공탁을 했지만, 이미 항소심에서 피해액을 공탁한 부분을 고려해 감형을 했는데,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이 부분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재판부가 ‘재벌총수 봐주기’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데,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재판부가 굳이 이런 무리한 결론을 내릴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경제민주화’ 바람에 재벌총수들에 대한 실형선고가 잇따르고 있는 추세도 재판부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이 만약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면, 김 회장 측은 형 집행정지 신청을 낼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은 평소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 급성 천식 등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으로 재벌 등 유력인들의 형 집행정지에 대한 사회인식이 급격히 나빠져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을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그룹 구성원들은 김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하다”며 “그룹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회장이 실형을 면하고 경영에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회장이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찾아가 보복 폭행을 하는 등 기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룹 내에서는 의리를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보스형’으로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대한생명보험의 윤리강령은 ‘신용과 의리를 바탕으로’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고, 한화증권의 윤리헌장 또한 ‘우리는 신용과 의리를 존중하는 한화인으로서’로 시작한다. 1981년 부친인 고 김종회 선대회장의 사망으로 29세의 어린 나이에 회장직을 맡다보니 괴팍한 성격이 생기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사람을 부리며 마음을 얻는 법을 터득했다는 후문이다. 의리와 신망을 중시하는 김 회장은 구성원들의 복지혜택이나 상여금을 지급하는 데도 통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김 회장이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금액을 덜 받아도 좋으니 우리 근로자들을 한 명도 해고하지 말고 매각을 추진해달라”고 제안한 일화는 재계에서 유명하다. 실제로 한화에너지와 한화에너지프라자에 소속된 근로자 1200여 명은 당시 매각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지 않고 고용승계가 됐다.
결심공판이 있던 2013년 12월 26일, 김 회장은 2시간이 넘게 간이침대에 누워 재판을 지켜봤다. 김 회장은 “앞으로 좋은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선처부탁한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변론을 진술하기도 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제대로 수형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제 김승연 회장의 운명은 2월 열리는 선고공판에 달려있다.
이선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