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석촌호수 살인사건 발생 당시 보도 내용을 방송한 KBS 뉴스 화면 캡처.
이 씨가 전 씨를 납치 살해한 사건은 2004년 1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을 오가며 의류 보따리상을 했던 이 씨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구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자금이었다. 자금 확보가 막막했던 이 씨는 경기 성남시의 한 운수업체 관계자로부터 ‘운수업체 사장 부인이 현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이에 이 씨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운수업체 사장 부인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 씨는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다른 공범 두 명을 범행에 가담시켰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유 아무개 씨(37)와 유 씨의 교도소 동기 강 아무개 씨(34)였다. 이 씨와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유 씨와 채무가 있었던 강 씨는 어렵지 않게 이 씨의 꾐에 넘어갔다. 세 사람은 범행 하루 전날 납치현장을 사전답사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범행 당일인 2004년 1월 2일 저녁 6시 30분, 이 씨 일당은 전 씨의 회사 주차장 사각지대에 몸을 숨긴 채 전 씨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들은 퇴근 후 전 씨가 자신의 승용차에 타려는 순간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폭행한 다음 흉기로 위협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빗나갔다. 전 씨가 몸부림치자 이 씨 등이 흉기로 위협한다는 게 전 씨를 찔러버린 것이다. 이 씨 일당은 피를 흘리는 전 씨를 상대로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대라고 협박했지만 전 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이 씨 등은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지 못해 현금 인출에 실패했고 전 씨의 지갑에 있는 100만 원짜리 수표 3장만을 옷깃에 구겨 넣었다. 이 씨 일당은 서울 석촌호수까지 이동한 뒤 전 씨를 태운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앞서의 수서경찰서 김 경사는 “당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119 대원들이 피해자가 양손이 다 결박 돼있고 하니까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이라 인지하고 112로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초 신고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탐문 수사를 벌이던 중 전 씨의 지갑에서 사라진 수표가 경기도 평택의 한 유흥주점에서 사용된 것을 알게 됐고 역추적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건 발생 한 달 도 채 안 된 2004년 1월 29일 유 씨와 강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강 씨와 유 씨는 강도살인혐의로 각각 12년형과 15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그러나 사건을 주도했던 이 씨의 행방이 묘연했다. 이 씨는 범행 다음 날인 2004년 1월 3일 중국으로 도피한 것이다. 수서경찰서 김 경사는 “당시 출국기록이 나오지 않았는데 위조여권으로 추정되는 여권으로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설명했다.
보따리장사를 하며 자주 인천항을 통해 중국을 오가던 이 씨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의 한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접 분식점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충당해왔다. 이 씨는 매번 가명을 바꿔가며 신분을 감추고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 수배 대상에 올라있던 이 씨는 2013년 11월 8일 중국 공안에 검문검색에서 꼬리가 잡혔다. 결국 이 씨는 2013년 12월 24일 국내로 송환되면서 10여 년간 도피 생활의 막을 내렸다.
수서경찰서 김 경사는 “이 씨의 키와 덩치가 많이 자란 상태로 수염까지 길러 10년 전의 몽타주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해외도피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현재 유족과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