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 ||
대북송금 특검팀의 입술이 타들어가고 있다. 대북송금의 비밀과 관련해 핵심 키맨 중 한 사람인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귀국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김 전 사장의 귀국은 지난달 26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오던 도중 일본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후 4월29일로 귀국일정을 늦췄다가, 다시 5월1일로 연기했으나 5일 현재까지 귀국치 않고 있다. 그의 일본 체류기간은 이미 열흘을 넘고 있다.
이처럼 김 전 사장의 귀국이 늦어지자 여러 억측이 나돌고 있다. 이미 김 전 사장의 마음은 현대쪽으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있다. 송두환 특검과 김 전 사장의 변호인인 이종왕 변호사의 초반 기싸움에서 일단 이 변호사가 우세승을 거두었다는 얘기도 오간다.
김 전 사장의 장기 일본 체류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지난 4월16일 공식 출범한 송두환 특검팀은 순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난데없이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행보 이탈이라는 엄청난 ‘암초’를 만났다. 특검팀의 당초 노림수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측에 반발하고 있는 김 전 사장을 건드려 폭탄발언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검팀 수사 협조를 위해 지난 4월26일 귀국하던 김 전 사장은 갑자기 일본에서 사라졌다. 그는 왜,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김 전 사장의 잠적과 관련,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이종왕 변호사이다. 이 변호사는 현재 김 전 사장의 변호인을 맡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소속된 김&장 법률사무소는 정몽헌 회장 및 가신들의 변호인을 모두 도맡고 있다. 한때 서로 대립축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정 회장과 김 전 사장의 변호인이 동일한 셈.
이와 관련, 이 변호사는 이미 지난 3월17일경 미국 LA에서 김 전 사장을 만나 특검 수사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사장이 일본으로 날아간 4월 마지막주 주말에도 어떤 식으로든 김 전 사장과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송두환 특별검사(왼쪽), 이종왕 변호사 | ||
김 전 사장의 행방이 묘연해진 4월28일 오후에는 이 변호사의 비서가 대신 전화를 받아 “변호사님은 주말에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고 퇴근하셨기에 그 이후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현재 변호사님은 부재중”이라는 답을 남겼다.
이 변호사 외에 추가로 지목되는 이는 현대 관계자들. 특검팀에서는 김 전 사장이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이미 정몽헌 회장 측근 등 관계자와 미국 현지서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런 징후는 여러 군데서 포착되고 있다.
김 전 사장이 2001년 10월 현대상선 사장직을 전격 사임한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 정 회장 을 중심으로 한 ‘대북사업 추진파’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현대측에 대한 김 전 사장의 섭섭함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소한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까지는 그랬다.
당시 LA에 머물던 김 전 사장은 현대측에 대해 “나도 마음만 고쳐 먹으면 폭로할 게 많다. 계속 건드리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이후 대선을 전후로 한 약 2~3개월간 김 전 사장은 전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때 현대측과 김 전 사장의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특검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현대측이 김 전 사장의 설득 작업에 들어갔으리라는 것. 현대 관계자들은 “정 회장과 김 전 사장의 인간 관계는 하루아침에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4월말에는 정 회장의 측근이 직접 미국으로 김 전 사장을 찾아가 대책을 함께 협의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한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한편 김 전 사장의 서울 강남 자택은 현재 아들 내외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을 김 전 사장의 며느리라고 밝힌 한 여성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버님에 대한 소식이나 행방은 솔직히 우리도 모른다. 한국에 언제 들어오는지도 정확히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것은 변호사님과 상의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말은 현대 관계자들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김 전 사장 뿐만 아니라 현대와 관련된 모든 입장은 이 변호사 단일 창구로 통일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번 특검 수사를 “49년생 동갑내기에 서울 법대 동문인 송두환 특검과 이종왕 변호사의 한판 싸움”으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단 초반 기세 싸움에서는 이 변호사가 승리했다는 관측이다.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김 전 사장은 일본에서 쉽사리 돌아오지 않고 있고, 반면 “곧 귀국해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던 특검팀의 말은 번번이 공수표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한 변호사는 추정임을 전제로 “특검팀에서 수표 배서자인 6명의 신원을 확보하고 수사키로 하는등 시시각각으로 수사가 진전되자 김 전 사장이 상황에 따른 대처를 위해 귀국 시기를 계속 조율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전망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