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톈진에 울려퍼지고 있는 비엔파오 소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스’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위로의 의미다. 톈진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비엔파오에 나선 것은 4월13일 진난취 신좡전(津南區 辛莊鎭)에서 한 굴착기 기사가 땅을 파다가 죽인 거대한 구렁이 때문이다.
<메이르신바오(每日新報)>의 보도에 따르면 3∼4m 길이의 구렁이 한 마리가 공사 도중에 굴착기에 잘려 죽었는데, 이후에 사스가 급속히 확산되는 등 불길한 일이 벌어지자 이 일과 연관지어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황당무계한 헛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스의 확산으로 불안에 빠진 일반인들에게는 그나마 위로가 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당초 중국인들은 이를 그저 대수롭지 않은 유언비어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환자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4월 중순부터 사스 알리기에 나섰고, 톈진시도 4월20일부터는 공식적으로 환자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3주일가량이 지난 지금의 톈진은 폭죽 터트리기 등을 통해 불안감을 다스리는 등 정신적인 공황에 허덕인다.
사스와 관련된 화제도 만발하고 있다. 지난 4일 톈진 난카이취의 한 호텔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호텔 주방 유리창에 “조심하시오. 이곳은 사스 발생지역입니다”(請注意 非典區)라고 누군가 써놨기 때문.
이곳을 담당하는 창홍(長虹)파출소는 비상이 떨어졌고, 하루 만에 범인으로 궈(郭)아무개씨를 검거했다. 공안에 따르면 한달 전까지 이 호텔 주방에서 일했던 그가 해고에 앙심을 품고, 전날 저녁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7일 톈진의 번화가인 빈지앙다오(濱江道)에서는 행인들이 가래침을 뱉는 20대 청년을 붙잡아 공안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가래침을 뱉는 청년을 보고 행인이 말렸지만 듣지 않자 주위에 있는 이들이 일제히 나서 청년을 공안요원에게 넘긴 것이다.
요즘 톈진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베이징’이다. 베이징이 사스의 새로운 진원지로 떠오르는 한편 타 지역의 감염자 가운데 상당수가 베이징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베이징공항에서 톈진까지 동행한 톈진의 택시기사는 베이징인들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었다. 8일까지 톈진의 공식 사망자가 5명인데, 그 가운데 2명이 베이징에서 감염되어 왔고, 이들을 통해 톈진의 사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또 크게는 자신의 마을이나 아파트촌, 작게는 자신의 가족집단 등의 안전만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가 편승하고 있다.
중국 고위층이 집결되어 있는 자금성 좌우의 정치 일번가 역시 사스에 무방비로 폭격을 맞고 있다. 지난 8일까지 베이징의 감염자 2천1백36명 가운데 이 지역은 중관춘이 있는 하이딩취(海淀區 환자 6백46명)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는 베이징 최대 번화가 왕푸징과 시단이 포함된 둥청취가 3백14명으로 가장 많고, 자오양취가 2백68명, 시청취가 89명이었다. 장쩌민, 주룽지 등은 상하이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 국방부장 츠하오톈의 감염소식이 퍼지는 등 삼엄한 분위기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