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에서 저력을 보인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시장 출마를 결심하자 여권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임준선 기자
여권에서 대구는 ‘80-80클럽’으로 불린다. 지난 대선에서 80% 투표율과 80% 득표율을 기록한 것을 빗댄 말이다. 투표율은 80.14%, 박 대통령 득표율은 79.7%였다. 전국 평균 투표율 75.8%와 박 대통령 득표율 51.6%를 상회하는 것이다. 대구는 투표율 전국 2위(광주 1위), 박 대통령 득표율 전국 1위를 기록했다. 2012년 12월 19일 대구에는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구가 응집력을 발휘해 박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것은 단지 이곳이 여당의 아성이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보다 10%가량 낮은 69.37% 득표를 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잘 알 수 있다. 박 대통령과 대구의 남다른 인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우선 박 대통령은 지난 1952년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또 대구는 박 대통령이 최초로 금배지를 달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부친 서거 후 박 대통령은 18년 동안 칩거하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새누리당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까지 대구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만큼은 대구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자신했던 것이다. 경북 지역의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대구는 보수의 성지이자 새누리당 표밭으로 꼽혔었다. 최근 몇 년 새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박 대통령 임기 동안엔 이러한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은 적지 않겠느냐. 그만큼 대구 시민에게 있어서 박 대통령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대구의 밑바닥 여론은 새누리당의 무혈입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특히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이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로 흡수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이 표만 달라고 했지 대구에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정권 출범 이후 오히려 대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실망감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역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시민을 바라보지 않고 중앙당과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 몇 명이 모여 후보를 낙점하고,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선거에 임하면 큰 코 다칠 것”이라고 전한다. 민주당 대구시당 이헌태 대변인도 “지금까지 대구에서 야당이 의미 있는 득표를 못한 것은 유력한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김부겸 전 의원과 같은 거물 후보가 출마하면 새누리당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야권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용지를 받아든 유권자들이 결국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여당에 표를 던졌던 관행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대구의 심상치 않은 민심소식을 접한 뒤에도 “투표장에선 우리를 찍을 것”이라며 안심해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0년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지원유세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동안 억눌려왔던 대구 시민들의 불만과 변화의 욕구가 겹치면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몇몇 국회의원들도 사석에서 “정치적 동종교배의 결과 지역은 더욱 낙후되고 민심은 자포자기의 상태에 놓여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대구가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각오로 선거에 임하지 않으면 민심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털어놓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대구 분위기를 여의도가 잘 읽어야 한다. 단순히 민심이 여당에 불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민주당으로선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가, 새누리당 쪽에선 반드시 수성해야 할 승부처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권 핵심부 내에선 요즘 들어 대구의 동향 파악에 나선 이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후보자를 낙점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도 퍼지고 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여권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권이 대구시장과 관련해 우려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패배할 경우 그 후폭풍이 다른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란 관측과 맞물려 있다. 새누리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관계자는 “흔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꼽는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지사 이른바 ‘수도권 빅3’의 경우 한 곳만 건지면 본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전패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도 나온다”면서 “그러나 대구는 절대 내줘선 안 된다는 게 당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대구가 심리적이자 정치적인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면 집권 2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구는 박 대통령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대구시장을 야권에 내준다면 박 대통령 역시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맞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대구시장 선거에 사활을 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대구시장 선거 결과가 ‘미니총선’으로 불리는 7월 재·보궐 선거는 물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까지 파급력을 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대구는 무주공산 상태다. ‘포스트 박근혜’를 차지하기 위한 여권 내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박 대통령 후계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구시장 선거를 계기로 ‘대구의 적자’가 누구인지 윤곽을 드러낼 수 있다. 새누리당 주류 친박을 포함해 여권의 각 계파가 대구시장 후보를 놓고 신경전을 빚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야권에서 출마해 승리한 대구시장은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크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전계완 매일피앤아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