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점쟁이들>의 한 장면.
가족들은 서 씨의 증상이 금방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성실히 살았던 서 씨에게 귀신이 붙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서 씨의 증상은 점점 악화돼갔다. 심지어 증상이 심해진 어느 날은 가족들에게 ‘조상 행세’를 하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아내와 딸에게 호통을 치는 것을 넘어 서 씨의 빙의 증상이 ‘폭력’을 휘두르는 상태까지 이르자 가족들은 퇴마의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서 씨의 딸은 15일 오후 퇴마사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서 씨의 딸은 “아버지의 증상이 심각하니 빨리 집에 좀 와 달라”고 퇴마사에게 요청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서 씨의 딸이 전화를 건 퇴마사는 사실 ‘정식’ 퇴마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속인으로 불리기에도 애매한 인물이었다. 퇴마사 이 아무개 씨는 평소 풍수지리나 기 치료에 관심이 많은 인물로 유명했다.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이나 내공도 깊었던 이 씨는 서 씨의 증상을 치료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이 씨는 서 씨와 각별한 사이였다. 다름 아닌 이 씨가 서 씨의 ‘처남’이었기 때문이다.
조카의 전화를 받은 이 씨는 곧바로 서 씨 집으로 달려갔다. 서 씨의 집에는 서 씨의 아내와 딸, 청주에서 내려온 서 씨의 장모 남 아무개 씨(77)도 있었다. 이 씨는 발작을 일으키는 서 씨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윽고 경건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이 씨는 얼마 못가 강력한 기세로 쫓던 서 씨에게 붙잡혔다. 서 씨는 초인적인 힘으로 이 씨를 넘어뜨린 후 이 씨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가족이 뒤따라가 서 씨를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수차례 부딪친 이 씨는 곧바로 숨을 거뒀다. 서 씨를 뜯어 말리던 장모 남 씨도 서 씨가 팔을 휘두르는 바람에 갈비뼈 3개가 부러지는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서 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경찰서에 온 서 씨는 여전히 정신이 깨지 않은 듯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서 씨가 정신이 오락가락해 수사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정신이 겨우 조금씩 돌아오더라”하고 전했다.
그렇다면 서 씨는 대체 왜 이런 증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경찰 조사 결과 서 씨는 그동안 정신병을 앓거나 병원을 다닌 일도 없어 더욱 의구심을 자아냈다. 기계설비 일을 성실히 하던 서 씨는 평소 점잖은 성격으로 그동안 가족들과의 관계도 더 없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서 씨와 이 씨가 평소 원한이 있거나 금전적으로 얽힌 관계도 아니었다. 매형, 처남 지간이고 잘 지냈기에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결국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서 씨가 진짜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만큼 알 수 없는 힘이 어딘가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서 유치장 입감 며칠 뒤에 정신이 조금 돌아온 서 씨는 “귀신이 시켜서 그랬다. 처남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라며 후회를 내비치기도 했다.
현재 사건은 지난 20일 검찰에 송치되어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충남 공주 무속인 살인사건이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남을지, 음모가 숨어있는 범죄로 남을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자녀들에 칼부림… 제 정신 맞어?
퇴마의식을 행하다 벌어진 잔혹사건은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1년에는 귀신을 쫓는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여성에게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되기도 했다. 무속인이었던 정 아무개 씨(여·48)는 수원시 팔달구 자신의 집에서 “잡귀를 쫓는다”는 이유로 어머니 조 아무개 씨(여·74)의 한 달간 대나무와 삼지창으로 온몸을 찌르고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엑소시즘’이라고 불리는 퇴마의식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건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19일 미국 메릴랜드주에서는 한 흑인 여성이 “자식들에게 귀신이 씌었다”며 퇴마의식을 행하다 흉기를 휘두르고 자식들을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아이들 엄마가 집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으나 이미 여성은 칼로 자녀 4명을 찌른 참혹극을 벌인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한 살 된 아들과 두 살 된 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이러한 퇴마의식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황이다. 퇴마사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주장하지만, 의학 관계자들은 뇌 질환의 일종인 ‘투렛 증후군’(틱의 일종인 뇌 질환)이기에 과학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