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입사 시험의 과열 양상을 막으려 도입한 ‘총장추천제’가 되레 큰 비난을 받으며 후폭풍이 일었다.
발표가 있은 후 1주일이 지난 1월 23일 언론을 통해 삼성그룹이 각 대학에 전달한 대학별 인원 할당 명수가 공개됐다. 이번 명단에 들어있는 대학은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55개 대학이었다. 대학 총장 추천권을 가장 많이 할당받은 대학은 성균관대로 115명이었다. 그 다음으로 서울대와 한양대가 110명, 고려대 연세대가 100명이었다.
또한 경북대가 100명을 받으며 고려대 연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해 눈길을 끌었다. 부산대도 인하대(70명), 경희대(60명) 등보다 많은 90명이었다. 반면 부산대, 경북대 등과 함께 지역 거점 국립대학으로 학생 수 등 규모가 비슷한 전남대는 두 대학의 절반도 되지 않는 40명을 할당받았다.
이에 사회적으로 “삼성이 영·호남 지역차별을 한다”, “대학을 줄 세워 서열화했다”는 등의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가 “배려와 균형, 특히 사회 약자에 대한 공생정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삼성그룹은 지역차별이나 대학 서열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생각했던 취지와는 다르게 해석돼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해 채용한 신입사원은 9000명 정도다. 그중 삼성전자에 배정되는 인원이 50~60%다. 삼성그룹 채용 인원 중 절반”이라며 “그래서 이번 총장 추천제 인원 할당도 이공계가 발달한 대학에 집중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명단을 보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학들은 공과대학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학교들이 많았다. 서울대보다도 많은 인원을 할당받은 성균관대는 공대 졸업생이 2012년 기준으로 1390명이다. 반면 서울대의 공대 졸업생은 753명이다. 서울대와 같이 110명의 할당 인원을 받은 한양대도 공대 졸업생은 1344명이었다. 서강대가 인원 할당이 40명에 그친 것은 상대적으로 공대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삼성의 총장추천제 거부 성명을 내기도 했다.
고려대, 연세대와 함께 100명의 인원을 할당받은 경북대의 경우 2010년 삼성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1년 ‘모바일공학과’를 신설해 매년 30명의 신입생을 뽑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대학 중에서는 영남만큼 인원이 할당된 대학이 보이지 않아 의문이 남는다. 전북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 학교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다. 규모로도 부산대, 경북대 등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부산대, 경북대의 절반도 되지 않는 40명을 할당 받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이러한 채용제도를 만든 취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대학 교수는 “이번 채용제도의 요지는 교수들이 학생의 인성이나 전문성을 보고 총장에게 추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성, 전문성 등은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분명 공정성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교수는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학생의 대학 성적이나 스펙 순서대로 추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게 서류전형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삼성그룹은 결국 대학총장 추천 채용제도를 전면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은 지난 1월 28일 “그동안 삼성 채용시험인 SSAT에 연간 20만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고, 삼성 취업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과열 양상이 벌어지며 사회적 비용이 커져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대학서열화, 지역차별 등 뜻하지 않았던 논란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러 대학총장 추천제, 서류심사 도입을 골자로 하는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을 전면 유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