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혼남이 10대 소녀를 꾀어 동거생활을 해오다 경찰에 검거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북부경찰서는 김철환씨(가명·43)를 미성년자 유인 및 간음 등의 혐의로 지난 5월30일 전격 구속했다.
묘한 것은 경찰에 나타난 ‘피해자’ 10대 소녀의 반응. 이 소녀는 경찰에서 “내가 좋아서 따라다녔는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며 되레 김씨를 감싸 수사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애지중지 딸아이를 키워오던 소녀의 부모들로서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
이 두 사람의 철없는 커플이 벌인 ‘애정행각’의 기간은 1년. 김철환씨는 섀시공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당 10만원을 받고 품을 파는 일명 ‘기술자’. 김씨는 지난 2001년 부인과 이혼한 뒤 셋집을 전전하며 혼자 살았다. 그는 생활비가 떨어질 만하면 새 일감을 찾아 이곳저곳 공사장을 떠돌았다.
그에게 취미가 있다면 일이 없는 날 인터넷에 접속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 현실에서의 삶은 고되고 남루했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그런 차별이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지 않더라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지난해 8월 초 유미양(가명·16)을 만난 곳도 인터넷이었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유미양에게 접근한 김씨는 서로를 알아가면서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이때 김씨는 ‘계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으며 결혼생활에 실패한 비극적 과거를 지닌 남자’로 자신을 소개했다.
한참 감수성 예민할 시기인 중학교 3학년 유미양의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그 사람’의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왠지 마음이 끌렸다. 유미양은 훗날 경찰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여운 사람이었다. 그에게 뭔가 ‘삶의 희망’을 던져주고 싶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수시로 인터넷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밀어를 속삭였다. 유미양을 향한 김씨의 구애는 점점 뜨거워져 “너의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낯뜨거운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김씨가 일을 나간 사이 유미양은 밥을 지어놓거나 빨래를 해놓았다. 일상과 전혀 다른 생활은 유미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영 이어질 것 같던 두 사람의 첫 번째 동거생활은 유미양의 부모의 끈질긴 추적으로 45일 만에 꼬리가 잡혔다. 평소 딸 유미양이 인터넷을 즐겼다는 사실에 착안한 가족이 유미양의 ID를 추적해 소재지를 파악했던 것.
김씨가 일을 나간 사이 인근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던 유미양은 이렇게 찾아온 부모님에게 덜미를 잡혔다. 평소 학교에서의 성적도 중상위권에 이르고 말썽 한 번 없던 딸이 중년의 이혼남과 함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유미양의 부모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 다녀야 할 유미양을 집에 묶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두 번째 도피는 지난 1월 유미양의 집 바로 아래께에서 시작됐다. 김씨가 자신의 셋방을 서울 수유동 유미양의 집 근처로 옮긴 것. 이 집에서 부모 몰래 생활하던 유미양은 보름 만에 스스로 집에 돌아갔다.
어머니에게는 “그 사람의 봉고차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다 왔다”라고만 말했을 따름이었다. 유미양이 걱정됐지만 스스로 돌아왔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으로 낙관한 유미양의 부모.
그러나 문제의 커플은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면서 틈만 나면 김씨의 셋방으로 달려갔던 것. 부모와 친구들까지 감쪽같이 속인 두 사람의 ‘반쪽짜리 동거생활’은 지난 5월 초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유없이 귀가가 늦는 등 또다시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유미양에 대해 부모님의 걱정이 부쩍 심해졌던 것. 예쁘장한 여중생이 교복을 입은 채로 중년 남자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 ‘이상한’ 풍경도 동네 사람들의 눈에 자주 목격됐다.
결국 두 사람은 지난 5월11일 세상의 간섭을 피해 마지막 가출을 감행했다. 유미양의 부모는 그녀의 세 번째 가출을 심상치 않게 여겨 가출 3일 만에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유미양의 부모로부터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경찰은 유미양의 주변으로부터 탐문에 들어갔고 보름간의 수사 끝에 강원도 화천의 한 민박집에서 이 철없는 커플을 검거할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도피생활, 그리고 비뚤어진 애정행각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