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19일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 12?9’ 행사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식을 마친 후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김원기 의장 등과 악수를 나누며 퇴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작전의 목표는 1차적으로 올해 17대 총선구도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간 ‘양강대결’로 만드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반(反) 한나라당 전선을 결집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면에는 조순형 대표 체제로 출범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민주당 약진-열린우리당 정체’ 현상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여권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작전의 전면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섰다는 점이다. 우선 노 대통령은 지난 12월24일 서갑원 박범계 윤훈열씨 등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나는 비서관·행정관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또 한나라당을 하나의 세력으로 하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한 축으로 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발언, 정치권에 총선 구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비공식-비공개 오찬에서 한 발언이고, 노 대통령 자신은 ‘덕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세 야당은 물론 ‘정신적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기보단 “노 대통령이 자신의 총선 구상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권의 작전이 민주당을 압박하는 강경일변도가 아니라, ‘재통합’을 매개로 한 일종의 ‘회유’전략도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내 중도·개혁파 견인을 겨냥한 이 전략에는 유력한 열린우리당 대표(당 의장) 후보인 정동영 의원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중심에 있다. 그만큼 민주당을 허물려는 여권 핵심부의 의중이 확고하다는 반증. 그러면 여권은 왜 이 시점에서 민주당 흔들기에 나섰을까?
노 대통령은 널리 알려졌듯 선거에서 ‘큰 그림’, 구도를 중요시하는 정치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민주당 찍으면…” 발언이 있기 꼭 네 달 전인 8월23일에도 그는 “선거는 선거운동 등 조그마한 일도 중요하지만 큰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여권 핵심부가 구도 변화를 적극 모색하고 나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양강구도를 강도 높게, 또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지금을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노무현 방식’에 따르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과 ‘구도’인데 열린우리당이 시쳇말로 도무지 ‘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멸의 길을 걸을 줄 알았던 민주당이 정당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노 대통령으로선 답답할 노릇 아닌가. 이번 발언은 향후 외부인사 영입, 선거전략 등에서 노 대통령이 핵심역할을 해 열린우리당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측근의 말대로 최근 노 대통령은 야당의 불법 사전운동 시비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로 비칠 언행을 계속해 왔다.
12월19일 노사모가 주축인 개혁네티즌연대가 여의도 공원에서 주최한 ‘리멤버 12·19’에 참석한 것이 대표적인 예. 노 대통령은 이날 “시민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존경하는 노사모 여러분 다시 한번 나서달라” “1급수가 아니면 2급수를 찾자”고 발언해 “열린우리당 지지를 노골적으로 선동했다”는 반발을 산 바 있다.
여권 핵심부는 한편으로 싫든 좋든 개혁세력을 양분하고 있는 민주당을 이대로 둬선 안된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 시급히 대선 당시 반노-후단협이 주축인 정통모임(구주류)과 친노-중도파인 통합모임을 분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를 계속할 경우 반노 연합전선이 확대돼 결과적으로 총선구도가 ‘개혁 대 반(反) 개혁’ ‘부패 대 반 부패’가 아닌 ‘친노 대 반노’로 그려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 여권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연대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김원기 열린우리당 공동의장은 “지금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정책연합을 하거나 합당하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종국에는 내년 총선을 전후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앞에 내걸고 완전히 합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기획통’인 이해찬 의원도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가면 내각제로 갈 것이며, 민주당도 내각제를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양당간 공조의 본질은 대통령의 권한을 극히 제한하고, 의원 내각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구조를 통해 기득권을 점유하겠다는 의도”라고 경고했다.
▲ 노 대통령의 파상공세에 민주당은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조순형 대표. | ||
아울러 호남 민심의 향배에 영향이 큰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관계개선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1월11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가 첫 일정으로 동교동 자택으로 DJ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통합론을 매개로 한 중도파에 대한 회유·견인 전략도 눈여겨볼 대목. 이미 정동영 의원이 12월23일 전주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뿌리가 같은 형제”라고 언급했고,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도 정 의원과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같은 날 “나는 정치해 오면서 운명적으로 통합과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도 통합론자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재통합론에 불을 당겼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재통합론과 관련, “반드시 당 대 당 통합이나 연합공천을 할 필요는 없다. 대선과 달리 총선은 여러 지역구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여론조사 등에서 우열이 가려질 경우 분산된 지지표를 한쪽으로 몰아주는 형태의 연대도 가능하다. 양당 지도부가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수도권 중심 의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며 연대 가능성을 높게 봤다.
여권은 이상과 같은 강온 전략이 적절히 구사될 경우 민주당 중도-개혁파와 호남 민심을 동시에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으로 견인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특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영남권에서 ‘반 한나라당’ 정서가 고조되면서 기존의 독점구조가 깨지고 있는 만큼, 민주당 구주류의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한나라당과의 공조 추진은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철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한나라당의 분당은 어차피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마 연초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며, 영남을 연고로 갈라지는 형국이 될 것이다. 민주당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라며 “향후 정치권은 지역과 이념에 의해 분당되는 사태가 러시를 이루어 군소 정당이 난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각각 축으로 한 양대 세력이 격돌하는 큰 구도 아래 자민련과 민주당 구주류, 한나라당 이탈파 등이 군소정당을 이루는 형태로 총선 후 새로운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란 시나리오라 하겠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