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시즌 동안 스키장 주변의 숙소인 시즌방을 함께 쓰는 남녀들이 늘면서 성 관련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시즌방을 이용하지만 주축은 30대다. 직장생활을 통해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기혼이더라도 자녀가 없어 맘껏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혈기왕성한 청춘남녀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대범한 성 관련 구설수도 많이 일어난다.
잠시 시즌방의 일상을 엿보자. 보통 시즌방의 평일은 조용하다. 다들 직장생활을 하는 터라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 말고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는 사정이 다르다. 퇴근을 하자마자 시즌방으로 직행한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고 바로 스키장으로 튀어나간다. 한창을 즐기고 나서야 시즌방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 다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격한 운동을 했기에 하나둘씩 모여 음식을 하기 시작한다.
매년 시즌방을 이용한다는 직장인 김 아무개 씨(30)는 “금요일 저녁 열심히 논 뒤 시즌방 사람들끼리 모여 저녁을 해먹는다. 자연스레 술잔이 돌아가고 땀을 흘린 직후 따뜻한 방에 있다 보니 금방 취한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만난 사람들끼리도 몇 번 술자리가 진행되면 금방 친해지기 마련이다. 다만 ‘너무’ 친해져 사고가 발생한다. 술잔을 주고받다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베란다로, 화장실로, 방으로 ‘거사’를 치르러 떠난다”며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는 “한번은 새벽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뒤늦게야 사람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다들 놀라서 찾으러 나갔는데 어디에도 없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려했는데 설마하고 찾아갔던 옥상에서 남녀 한 쌍을 발견했다. 옷은 바람에 날린 것인지 상의만 입고 잠들었더라.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하마터면 동사할 뻔해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예 연애사업을 위해 시즌방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시즌방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에 성공한 최 아무개 씨(여·34)는 “남녀비율을 딱 맞춰 입주자를 모집하는 시즌방이 있으면 성공률 100%를 장담한다. 갈 땐 혼자지만 올 땐 둘이거나 혹은 셋이 되기도 한다. 연애사업은 야간스키가 끝나는 자정부터 피크”라며 “남자들끼리 시즌방을 잡아두고 스키장으로 ‘여자사냥’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다니던 스키장에선 헌팅한 여자들에게 술을 과하게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다음 집단 성폭행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정이 어쨌든 성인남녀가 자유로이 연애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간혹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현재 10명의 회원들과 함께 시즌방을 사용하고 있는 강 아무개 씨(29)는 “시즌 후반이 되면 다들 긴장이 풀어져 사고가 많이 생긴다. 다시 안 볼 사람들이라 생각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 직장, 나이까지 다 속인 남자가 마지막 날 20대 여자를 성폭행 하는 사건도 있었다.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라 모두 마음 놓고 술을 마신 게 화근이었다”며 “다음 날 일어나서야 여자 한 명이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가해자의 신분 모두가 거짓이라 결국 잡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간혹 변태들이 등장해 시즌방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한다. 직장인 박 아무개 씨(여·30)는 “대기업에 다니는 멀쩡한 남자였는데 내게 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친절히 접근했다. 근데 자세를 잡아준다는 핑계로 허리와 어깨를 잡더니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게 아닌가. 또 내 앞에서 손을 잡아 당겨 자신 위로 넘어지게 해 화를 냈더니 다음 날부턴 시즌방에 나오지 않았다”며 몸서리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키장 인근의 경찰들은 겨울만 되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스키장 인근의 한 지구대 관계자는 “스키시즌이면 고성방가, 폭행, 성추행, 도난 등으로 신고가 자주 들어온다. 성수기에는 매 주말마다 달방(시즌방)으로 출동하기도 한다”며 “대부분 만취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일 경우에는 술이 깨면 합의해 조용히 넘어간다. 하지만 성 관련 범죄는 엄격히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여자 양말 집착남 세탁기 뒤져 ‘킁킁’
영화 <변태가면> 스틸.
시즌방 운영경험이 있는 김 아무개 씨(31)는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회원들끼리 갈등을 일으켜 곤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김 씨는 “내가 본 사람은 여자 발 냄새에 집착하는 남자였다. 한겨울이라도 스키나 보드를 타면 땀을 많이 흘려 여자라도 어쩔 수 없이 발 냄새가 나는데 뭔가 이를 즐기는 듯 보였다”며 “하루는 몸이 안 좋다고 시즌방에 남아있겠다고 하기에 뭔가 수상쩍어 몰래 지켜봤더니 여자전용 세탁기를 뒤져 양말을 꺼내 냄새를 맡는 게 아닌가. 속옷도 아니고 정말 황당했었다”고 말했다.
냄새만 맡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여성들의 특정 물건에 집착해 아예 훔쳐가는 변태들도 있다. 5년째 시즌방을 이용하고 있는 최 아무개 씨(여·34)는 “지난해 변태를 만나 기분이 상했다. 이상하게 속옷만 빨아놓으면 한 개씩 없어지는 게 아닌가. 처음엔 누가 착각해 가지고 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가 의도적으로 훔쳐갔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가 만난 변태처럼 시즌방에는 대부분 직장에 다니며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변태행각을 지능적으로 벌이기도 한다. 앞서의 김 씨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노트북에 웹캠을 설치해놓고 마치 작동이 안 되는 것처럼 꾸며 몰래카메라를 찍었다고 하더라”며 “여자 회원들에게 노트북을 빌려주는 것처럼 해놓고 그 안에서 옷 갈아입고 자는 모습을 다 찍었던 것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 나까지 무서워지더라”고 말했다. [박]
“밤마다 신음소리…죽을 맛”
남남으로 시작된 시즌방 생활에도 동고동락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의 작대기가 이리저리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남녀성비가 맞지 않는다거나 인원초과로 새로 생긴 연인을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 사람을 지목해 왕따를 시켜 제 발로 나가게끔 만드는 일도 일어난다.
스키장 주변의 콘도나 펜션, 호텔, 민박 등은 젊은이들의 공동 숙소인 시즌방으로 이용된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즌방을 아지트로 활용해 모텔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오로지 스키를 즐기기 위해 시즌방을 택했던 김 아무개 씨(31)는 혹시나 있을 사고에 대비해 남자들만 모인 곳을 찾았다. 김 씨는 “오히려 남자들만 있는 곳이 더 문란했다. 주말마다 여자들을 헌팅해서 데려와 원나잇을 즐기더라.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참다못해 한 소리를 했더니 오히려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왕따를 시켜 보증금 30만 원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왔다”고 말했다. [박]
놀면서 돈 버는 ‘똑똑한 베짱이’들
매주 열 일 제치고 스키장으로 향하는 시즌방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이들도 있다. 그저 놀고먹는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엔 시즌방을 이용해 취미생활도 맘껏 즐기고 투자이익을 얻는 ‘똑똑한 베짱이’들도 적지 않다.
먼저 한 명이 나서 방을 잡아두고 임대료를 함께 낼 투자자를 찾거나 처음부터 공동 자금을 마련해 방을 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투자자들이 모여 운영되는 시즌방은 동호회원들이 꾸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단 게스트라 불리는 이들에게 항상 방문을 열어둔다. 게스트는 말 그대로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을 말하는데 1박에 3만~5만 원을 받는다. 이렇게 시즌 내내 게스트에게 숙박비를 받아 식비와 운영비 등을 지불하고 남는 돈은 스키장이 폐장하는 날 투자자들이 나눠 갖는다. 보통 40만~60만 원을 투자하는데 이익금은 시즌방을 어떻게 운영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전혀 이익이 남지 않을 수도 있고 원금을 돌려받고도 추가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시즌 강원도 평창의 한 리조트 인근에서 시즌방 투자자로 참여한 강 아무개 씨(27)는 지난해 10월 인터넷에서 시즌방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선뜻 50만 원을 입금했다. 매주 스키장을 찾는 강 씨는 한 번 떠날 때마다 최소 10만 원을 숙박비로 지불했는데 약 4개월 동안 50만 원만 내면 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강 씨는 “나처럼 자주 스키장을 찾는 사람들은 시즌방에서 묵는 게 싸다. 성수기나 주말에는 시즌방 게스트 자리도 나지 않기에 아예 무제한으로 방을 쓸 수 있는 시즌방 투자가 유리하다. 게다가 장사가 잘되는 시즌방의 경우 나중에 이익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혹 투자금만 되돌려 받는데도 공짜로 먹고 자고 한 셈이니 아쉽지 않다. 친구들 중에는 시즌방 3~4개씩 투자하는 애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즌방이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건물 소유주들도 하나 둘씩 ‘시즌방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건물주 사이에선 시즌방 계약은 로또 당첨으로 불릴 정도다. 장기계약으로 방이 빌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며 집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관리에 신경 쓸 일도 없기 때문이다.
경기 이천시의 지산포레스트리조트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강원도 인근에는 기존에 펜션이나 민박으로 운영하던 건물을 시즌방으로 사용하는 추세이며 이곳은 수도권과 가깝다보니 주말 별장 형태가 많은 게 특징이다. 평소에는 주말별장으로 이용하다가 휴가기간이나 스키 시즌에만 임대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라며 “스키장과의 거리나 방 크기, 주변의 편의시설 등에 따라 임대료 차이가 많으나 평균적으로 83㎡(25평) 시즌방의 경우 월 110만 원가량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물론 스키장과 아주 가깝거나 최신시설을 갖춘 곳은 그보다 작은 크기에도 월 150만 원 이상을 받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