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외국인 매도 공세 등의 영향으로 석 달 연속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일요신문 DB
가장 대표적인 곳이 LG그룹이다. 화학·디스플레이·전자, 주력 3사의 주가 낙폭이 모두 시장 평균보다 깊다. 셰일가스로 고유가에 제동이 걸리며 맷집 좋기로 유명한 LG화학조차 발목이 잡혔다. 석유화학과 2차전지는 모두 고유가 수혜 사업이다. LG전자는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중저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LG디스플레이는 사정이 좀 낫지만, 고질적인 디스플레이 패널가격 부진의 늪에 여전히 발을 담그고 있다.
이 와중에 구본무 회장의 (주)LG 지분 11%의 가치는 1조 원 아래로 떨어질 위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최저 수준이다. 4대 그룹 총수의 주식가치를 따지면 구 회장이 꼴찌다. 익명의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팔아야 할 이유는 눈에 띄는데, 사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며 “5년 후, 10년 후 LG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주식은 전문 투자자들에게 기피대상이 되기 십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사정이 괜찮은 것도 아니다. 삼성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계열사들의 실적이 그야말로 엉망이다. 지난해 그룹 영업이익의 92%가 삼성전자에서 비롯됐는데, 올해도 이 같은 쏠림 현상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마저도 지난해보다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그래도 웬만하면 삼성전자 매수를 추천하면 통했는데, 요즘은 그게 어려워졌다. 요즘 삼성전자를 최우선 추천하는 애널리스트도 거의 없다”면서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 새로 추진하는 사업들은 안개 속이고, 스마트폰에서는 중국 등 중저가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릴 만한 전략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가 실적 압박을 받으면 사업구조상 납품을 하는 부품회사들의 단가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만 좋은 현상은 전문 투자자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 않다. 지금이 딱 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원화강세에 시달리다 최근 외국인 자금이탈로 인한 원화약세가 나타나며 한숨을 돌린 현대차그룹 사정도 녹록하지 않다. 연초 미국과 중국 판매가 양호하지만, 문제는 국내다. 수익성 높은 중·대형차 비중이 높은 국내 시장에서 독일산 수입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여전히 원화대비 약세인 엔화 값 때문에 북미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도 계속 위협받는 상황이다. 심지어 ‘제네시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신 모델도 없다. 연내 출시 예정인 ‘쏘나타’가 거의 유일하다.
한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그나마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라도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현대·기아차는 프리미엄시장에서는 독일에 열세고, 일반 시장에서는 일본과 미국업체의 반격을 받고 있다. 품격과 성능은 독일차보다 못하고, 성능대비 가격은 일본차보다는 못하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혁신이 필요한데, 그게 보이질 않는다”면서 “최근 외국인들이 자동차주를 가장 공격적으로 팔아 치우는 것도 이 같은 이유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SK그룹이라고 별수 없는 듯하다. 셰일가스로 인한 유례없는 유가안정은 가장 큰 에너지 소비원인 중국 경제의 부진과 맞물려 정유와 석유화학부문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화수분 역할을 했던 SK텔레콤도 포화상태에 달한 국내 통신시장과 정부의 각종 규제에 막혀 독 밑에 구멍이 난 지 오래다. SK하이닉스가 그나마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며 선전하고 있지만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부침이 심한 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특성이다. 올해에는 괜찮겠지만 당장 내년, 내후년 상황은 낙관할 수 없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예전 삼성전자 주가가 박스권에 갇혔던 시기는 이익의 상당부분을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던 때다. 메모리 반도체는 활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짧아 장기투자가 어렵다”며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이겨 예전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은 아니지만 여전히 예측이 쉽지 않다. 최근 추진 중인 비메모리 부문은 성공하면 좋겠지만, 세계 반도체 역사상 메모리와 비메모리에서 동시에 글로벌 최고 수준에 오른 곳은 없다”고 꼬집었다.
4대그룹주 밖으로 눈을 돌려도 한숨뿐이다. 포스코, GS, 한화, 두산 등은 이름값을 못할 정도로 돈 벌이가 초라해졌고, 현대, 한진, 동부 등은 있는 재산 내다팔아서 빚을 갚아야 할 처지다. 심지어 그나마 팔 곳조차 마땅치 않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지금은 주식 할 때가 아니라 현금을 모아야 할 때다. 지수 전망도 의미가 없다. 유동성 장세는 오를 때 천정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떨어질 때도 바닥을 잴 여유가 없다”면서 “일단 발을 빼는 게 나아 보인다. 현금을 확보한 채 불투명한 경제상황과 기업들의 체질개선이 가시화되기까지 기다렸다가 확실히 생존할 기업의 윤곽이 드러나면 싼값에 매수하는 전략이 지금은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