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원 단청장이 자격증을 빌려준 문화재 보수업체가 숭례문 복원공사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제는 홍 단청장이 돈을 받은 업체 중에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한 업체도 있었던 것. 해당 업체는 충남의 A 건설 업체로 2010년경 숭례문 복원 공사 중 단청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 홍 단청장에게 1800만 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정체불명의 돈이 홍 단청장에게 전달된 셈. 경찰은 이를 ‘자격증을 빌린 대가’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 단청장이 업체에게 자격증을 빌려준 사실은 확인됐고 단청을 칠했는지 여부는 알려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이 지난해 10월, 완공 5개월 만에 단청이 훼손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으로 불거진 것을 감안하면 홍 단청장과 건설 업체의 자격증 대여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홍 단청장뿐만 아니라 경찰이 이번에 적발한 자격증 대여 기술자 중에는 문화재청 전 과장 김 아무개 씨, 문화재 수리기술자격시험 전 출제위원 곽 아무개 씨 등 문화재계 인사들을 포함해 홍 단청장의 부인과 딸, 대학 교수, 화가 등 일반인들도 연루되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자격증을 빌려준 15명의 기술자가 19곳의 업체로부터 자격증 대여 명목으로 받은 금액은 총 ‘4억 6300만 원’에 달한다. 이들 업체가 지난 5년 동안 공사한 문화재는 숭례문,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 국보 8개소를 포함해 보물 39개소, 사적지 38개소 등 전국 ‘155개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3일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과 관련해 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신응수 대목장의 W 목재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경찰이 압수물품을 챙겨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문화재 보수 업체들이 왜 거액을 주면서까지 기술자들의 자격증을 빌린 것일까. 단서는 문화재 보수 업체 등록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재 보수 업체가 공사를 발주받기 위해선 단청, 보수, 조경 등 관련 기술자 4명을 보유해야 한다. 한 보수 업체 관계자는 “기술자들을 직접 고용해서 월급을 주며 공사하기에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든다. 그래서 일단 자격증만 임시방편으로 임대를 하는 것”이라며 “기술자가 현장에 직접 일일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도 된다. 사실 숭례문 논란 이후로 이것이 대대적으로 불거진 것이지 그 전에는 한 번도 적발된 적이 없었다. 문화재 보수 업계에서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자격증 대여는 장당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앞서의 관계자는 “업계 용어로는 자격증 대여를 ‘수첩’이라고 한다. 보수 분야보단 단청 분야가 조금 더 싸게 먹히는 편이다. 기술자 4명 다 임대하면 1억 원에서 1억 2000만 원가량은 든다”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격증 대여가 업계에서 광범위하고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확인한 문화재 보수 업체 5곳 모두는 “자격증 대여는 수년 전부터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 20년 경력을 쌓았다는 한 관계자는 “기술자를 데려와서 일을 시키면 기본적인 대패질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격증 없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더 나을 때가 많다”라고 전했다.
숭례문이 복원 5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지고 금(왼쪽과 오른쪽 사진)이 가는 등 부실 보수공사가 밝혀져 논란이 일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편 자격증 대여 문제는 문화재계의 문제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목소리도 팽배하다. 이 문제만 해결해서는 문화재 전반에 뻗어있는 병폐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자격증 대여 문제는 사실 변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문화재 전반에 퍼진 ‘카르텔’이다. 일부 대목장의 사업 독점은 문화재 보수 업계에서 가장 불만이 크고 부실 공사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문화재 보수 업계 관계자는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귀띔하기도 했다. 해당 관계자는 “문화재계에도 전관예우가 있다. 문화재청에서 근무한 인사면 아예 업체를 차리거나 업체에서 서둘러 데려가려고 야단이다. 문화재청과 일종의 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서 수십 억짜리 수의계약이 오고간다. 그러기 위해서 로비는 필수다. ‘실력보다는 로비’가 통하는 건 문화재계 바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화재 보수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 공사는 민간 기업에 영리 목적으로 주기보다는 국가가 아예 직영하는 편이 낫고, 문화재 수리업체에 기술자 4명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도 폐지하는 게 옳다”며 “문화재 전반에 끼리끼리 끌어가는 ‘문피아(문화재 마피아)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