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일본은 역사를 자신들의 유리한 입장으로 바꾸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동북공정이니 위안부 문제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교학사 교과서 논란도 그 연장 선상이라 할 수 있다.
박문원 원장은 홍산옥기에 반해 20년간 중국서 4000여 점을 수집했다. 홍산문화는 중국보다는 고조선의 선대 문명인 동이족(한민족) 문화와 유사성이 더 많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월 초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이 아파트에 들어서자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향했던 킹스크로스역 플랫폼 9와4분의3을 통과한 느낌이었다. 그곳엔 6000년 이상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유물들로 가득했다.
“4000점이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손바닥만한 크기부터 책상보다 더 큰 유물로 가득했다. 박 원장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첫 궁금증. 이게 다 뭐지?
홍산문화의 유적지는 중국에 있다. 더구나 중국은 이 유물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고 더 크고 더 위대한 중화민족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홍산문화의 유물에는 중국 민족의 특징보다는 고조선의 선대 문명인 ‘동이족’의 문화적 유사성이 더 많이 있다. 그곳에서 발굴된 적석총이나 빗살무늬토기 등이 그 증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3000년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세계 4대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걸 언제부터 왜 모으게 됐을까.
“90년대 초 사업상 중국을 방문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홍산 옥기를 접했습니다. 옥기를 본 순간 운명이란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 길을 걷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사건을 접할 때,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이건 운명이다.
“고생은 말로 다 설명 못합니다. 하지만 한 점 한 점 발굴하고 수집하면 모든 것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홍산 옥기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는 매력 덩어리입니다.”
그렇게 20년. 이제 그에겐 잘나가던 사업도 가정도 모두 없다. 없는 게 또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유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개인 소장은 혼자만의 감흥에 그치지만 박물관에서 영구적 전시는 만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과 지자체 등에 전시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유물 자체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의혹에 찬 눈빛뿐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프레스센터에서 홍산문화유물 공개 고증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문제는 고증을 할 연구자가 부족하다는 것. 국내에 고조선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10여 명 정도이고 더구나 그보다 앞선 홍산문화의 옥으로 만든 유물에 대한 전문가는 거의 없다. 결국 중국 옥 전문가를 초청할 수밖에 없었다.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3000년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분묘에서 돼지, 호랑이, 용 등의 조각 장식품이 다량 출토되는 등 높은 공예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임준선 기자
“옥은 400여 종이 있습니다. 각각 성질이 다르고 더구나 땅속에 묻혀 있던 옥의 상태를 보고 진품과 위품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진품을 진품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 가품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만 이건 또다른 고통이다. 진짜인 나를 증명하는 것.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해 12월 UN과 중국정부가 주관하는 2013 UN 중국문화산업엑스포(MDGs 차이나)에서 중국 민간 10대 국보 지정(전문가 학자 부문)과 문물보호상을 수상한 것이다.
유엔새천년발전목표(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는 2000년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Millenni-um Summit’에서 채택된 범세계적 의제로, 191개 UN회원국은 2015년까지 빈곤 퇴치, 보건 교육의 개선, 성 평등과 여권신장, 환경보호 국제적 연대 구축 등 8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공동선언이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주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새로운 세계적 트렌드다.
그는 버겁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 방대한 유물을 유지하고 관리하기에. 그는 소망한다. 우리 상고사와 고대 유물에 대해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기를. 그래서 그가 모은 유물을 바탕으로 박물관도 생기고, 아니면 박물관에서 전시라도 되기를.
김종찬 객원기자
8000년 전에 치아 수술을?
홍산문화의 가장 놀라운 유물은 흥륭와에서 발견된 치아 수술 흔적이다. 중국, 일본 학자들이 이것을 발굴하고 4년을 고민했다고 한다. 진짜 수술 흔적 같기는 한데, 기원전 6000년 흥륭와문화 시대에 치아 수술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학자들이 이 유골을 가져가서 4년간 집중연구를 해 2008년 2월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틀림없이 인공적인 치아수술 흔적이라는 것이다. 두개골이 그대로 나왔고, 치아에 뚫린 구멍의 직경이 모두 같고 도구를 이용한 연마 흔적도 발견되었다. 현미경 사진을 찍어봤더니 나선형 연마흔적이 발견됐고 이것은 인공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은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충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뚫은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수술 흔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개골 수술은 유럽에서 기원전 5000년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되었고, 중국에서도 기원전 2500년 두개골 수술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치아 수술 흔적이 발견된 것은 홍산 유적지가 유일하다. [김]
강원 고성·전남 여수 ‘옥결’ 출토
홍산문화의 원류로 불리는 흥륭와문화와 같은 모양의 옥결이 대한민국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유적에서 나왔다. 기원전 6000년까지 올라간다고 보고 있는 유적이다. 2007년에 전라남도 여수시에서도 비슷한 옥결이 인골과 함께 발굴되었다. 모양이 흥륭와문화 옥결과 똑같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유적에서 나온 옥 귀걸이(사적 426호)도 기원전 6000년 이상으로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흥륭와문화 형성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옥결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흥륭와문화 옥의 성분을 분석했더니 직선거리로 400km 떨어진 랴오닝 성의 수암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옥으로 밝혀졌다. 수암에서 조금만 더 가면 압록강이고 두만강 쪽으로 동해를 타고 내려오면 문암리로 연결된다. 홍산 일대에서 발견되는 빗살무늬토기도 문암리 유적에서 똑같이 나온다.
기원전 6000년에 흥륭와문화 단계에서는 한반도 북부지역과 요서, 요동 지역이 하나의 단일 문화권이었다는 이야기다. [김]
적석총 다수 발견… 한민족과 깊은 연관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연대는 기원전 4700년~기원전 2900년경으로 지금까지 적봉 능원 건평 조양 등 500여 곳의 유적을 찾아냈다. 발견 지역은 옌산 산맥의 북쪽, 요하 지류인 서요하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지에서 발굴이 잇달았으며, 채도와 세석기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1954년 홍산 후를 기념하여 홍산문화라고 명명되었다. 중국에 의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요하문명’으로 부르고 있다.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홍산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옥기가 발견돼 홍산옥기라 하였고 중국 중원에서 보기에 홍산 뒤쪽에서 발견되었기에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시에 있는 홍산 후 유적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의 하북성 북부에서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 요령성 서부에 해당된다.
홍산문화에서는 농업이 주를 이루며, 가축을 사육한 축산도 발달하고 있어 돼지나 양이 길러졌다. 한편에서는 수렵이나 채집 등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초를 채집하기도 했다.
홍산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를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돼지, 호랑이, 새 외에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저룡 또는 옥저룡이나 옥웅룡 등으로 불리는 홍산문화의 옥룡(용을 조각한 구슬)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반용, 문용 등의 구별이 분명해진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문화가 이후 중원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홍산문화의 옥기나 유적 등에 대한 다른 견해 또한 존재한다. 중국인들이 주로 저룡이나 옥저룡이라고 하는 형태의 옥기가 사실은 용이 아닌 생물의 태아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견해와 홍산문화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이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한민족(또는 동이족)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한·중 간에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요하문명의 상징물은 급속도로 중국화하고 있다. 홍산문화 유적지가 밀집한 내몽고의 적봉시, 옹우특기, 오한기, 요녕성의 능원시, 건평현 조양시 등에서는 몇해 전부터 홍산문화의 상징인 옥저룡ㆍ옥웅룡으로 지역의 상징물을 교체했다. 중국 영토에 사는 민족은 중화민족이고 역사도 중국사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56개 민족을 하나의 단일한 중화민족으로 묶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 이론의 바탕이다. ‘하상주단대공정(1996~2000)’→‘동북공정(2002~2007)’→‘중화문명탐원공정(2003~진행중)’→‘국사수정공정(2005~2015)’으로 이어지는 논리의 구조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사수정공정은 이런 일련의 역사 관련 국가 공정의 완결판인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중국사를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2005~2007년 기초자료 수집을 마치고 2007년부터 본격 수정을 시작해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중국의 정사인 25사를 대대적으로 수정해 재편찬하고 있는 것이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