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르푸 국제전람센터에서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가 벌이고 있는 김치 판촉행사. | ||
고지는 북한이 먼저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력은 역시 한국이 우세하다. 뒤늦게 시장의 중요성을 알고 뛰어든 한국 기업들은 순식간에 북한 고지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제3국에서 펼쳐지는 한국과 북한의 김치 전쟁을 이곳 중국 현지에서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장기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과 북한의 김치 전쟁은 경제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한국이 연전연승의 분위기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베이징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한 사스는 우리 전통음식 김치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음식대국 중국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 이 기회를 먼저 탄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그때까지 베이징의 한국 기업 밀집 지역 가운데 하나인 신위앤리(新源里)에 위치한 북한 음식 전문점 해당화(海棠花)를 비롯해 옌지(延吉), 선양(瀋陽), 따리엔(大連), 톈진(天津)에 위치한 ‘옥류관’, ‘유경식당’ 등을 통해 김치를 한국인 및 중국인들에게 공급했었다.
하지만 북한의 김치 판매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해당화 역시 창핑(昌平)에 작은 규모의 공장이 있는 정도로 식당을 통한 유통이 고작이었다. 사스가 창궐하면서 중국 현지 매체에 연일 한국인의 낮은 사스 감염율과 그 원인이 김치에 있다는 얘기가 확산되면서, 해당화 김치가 바빠졌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곳은 2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왕징(望京)의 식품상가인 난후(南湖)시장이었다. 해당화 김치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오전 8시에 문을 연 후 2시간 정도면 다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해당화 김치의 공급은 한계가 있었다.
▲ 베이징의 북한식당인 ‘해당화’. | ||
하지만 한국기업이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북한산 김치나 조선족 동포들이 만든 김치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 김치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한류 열풍’이다. ‘한국산’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중국 현지 주민들에게 엄청난 신뢰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 김치의 맛을 결정하는 소금의 질이나 고춧가루의 입자 기술 등에서 차이가 있고, 젓갈 사용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김치기술을 따라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기존 북한산이나 조선족 김치에 비해 한국 김치가 맛에서도 훨씬 앞선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유통이나 마케팅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명성을 갖춘 한국 김치의 중국 진출은 조용한 가운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대표처(관장 정운용)다. 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4월초 정운용 관장은 중국인들이 통마늘을 먹는 것을 보고, 휠씬 더 편하고, 맛있게 마늘을 섭취하는 김치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후 베이징텔레비전에 김치요리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고, 상하이에서는 한국김치전시회를 여는 한편 중국 최대의 대형 유통망이 된 ‘까르푸’에서는 소비자를 상대로 판촉활동도 벌였다.
실제 한국 D기업의 경우 3월 이전만 해도 한 달에 한 콘테이너 정도 수입되던 것이 5월 말 이후 네 콘테이너로 늘어나는 등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가격면에서도 한국 기업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다가왔다. 현재 중국 현지 까르푸 등에서 팔리는 북한산이나 조선족 김치는 4백g짜리 한봉지가 7.5위안(우리돈 1000원 가량)이다. 반면 한국산 김치의 도매가는 1kg에 1천2백위안 정도이기 때문에 절반 가량 싼 셈이다.
한국 기업의 물량 공세에 대해 북한측은 일단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가 ‘해당화’를 직접 방문했을 때에도 그들은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렸다. 식당 주변 사람들은 “속내야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는 한국 김치 시장의 확산에 대해 짐짓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더 울상을 짓는 쪽은 조선족 동포들의 김치 공장이다. 문화적 특성상 북한과 남한의 김치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는 데다, 북한 김치만 꾸준히 찾는 소비자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반면, 중국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판촉을 해온 조선족 김치는 한국 시장의 파상공세에 거의 시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
김치가 점점 인기를 얻어가자, 중국 현지 기업에서도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김치를 일본의 ‘기무치’로 만들었던 전례도 있기 때문. 김치 시장이 비대하게 커지면 중국 당국 역시 한국 기업에 딴지를 걸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최근 팽배해지고 있다.
조창완 중국전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