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열린우리당 통합을 위한 DJ의 의중이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해 11월3일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 ||
최근 DJ가 양당에 재통합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전해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통합론’의 실행수단으로는 정대철 의원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양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불거져나오는 통합론과 관련한 DJ의 속내가 처음 드러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 열린우리당(우리당)의 뿌리인 민주당 창당의 1인 보스였던 DJ의 의중이 양당 재결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만으로도, 향후 정치적 지형의 변동 에 따라 양쪽의 통합이 실현될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새해를 맞은 1월1일 자택을 개방했던 정대철 의원은 세배객을 맞는 자리에서 일부 인사들에게 이 같은 ‘천기’(天機)를 누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정 의원 자택을 찾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의원이 ‘양당이 통합하는 게 DJ의 뜻이다. DJ로부터 통합을 위해 힘을 써 달라는 뜻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정 대표는 통합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양당이 모두 사는 길이며 그것이 DJ의 뜻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자리에 동석했던 다른 정치권 인사도 “나 역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면서 “특히 DJ로서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모두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정 의원이 DJ가 구상하는 양당 통합의 주역으로 선택된 것은 그의 이력과 품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 의원은 분당 이전 민주당의 대표를 지냈고, 현재 우리당에 몸담고 있지만 막판까지 ‘분당 결사 반대, 통합만이 살 길’을 외쳤다는 점에서 재통합 시나리오를 실행할 최적의 인물이라는 판단이 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 의원이 주장해온 통합론은 이렇게 요악된다.
“양당 지지율에 변화가 없으면 결국 통합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운동 세력 모두가 사는 길이다. 설혹 중앙당 차원의 통합이 되지 않으면 양당의 지구당 경선에서 당선된 두 후보자 간의 ‘통합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 의원의 최근 정치적 궤적을 역으로 따라가면서 복기(復棋)해 보면 그때그때 행했던 그의 행적이 갖는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해석된다.
정 의원은 우리당 창당 멤버가 민주당을 뛰쳐 나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던 지난해 9월23일 이후 우리당에 입당한 10월 중순까지 재결합에 대한 꿈과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10월5일 국회 통외통위의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정 의원은 “총선 전날까지도 (민주당과 신당의) 통합운동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민주-우리당의 통합을 지속적으로 외쳐온 정대철 우리당 의원은 최근 통합을 위해 애써달라는 DJ의 뜻을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현기자 | ||
1월1일 신년하례차 동교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DJ로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근태 우리당 원내대표도 하루 뒤인 2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반한나라당 전선을 조직화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민주당은 정치개혁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열린우리당과 공조해야 한다”며 통합론에 무게를 뒀다.
김원기 우리당 공동의장도 1일 단배식 행사 때 “총선 후에는 합당이 됐든 정책연합이 됐든 (원내) 과반수 세력을 구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그런 노력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가 해야 된다”고 강조한 일이 있다. 김 의장이 이날 비록 시점을 ‘총선 후’라고 밝히긴 했으나, 정치권에서 호흡이 가장 잘 맞는 인사로 알려진 정대철 의원과 하루 시간차로 재통합론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을 한 데 대해 당 안팎에서는 우리당 중진들이 통합 가능성에 대한 교감을 바탕으로 여론 정지작업에 들었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도 설훈 의원이 연일 통합론을 주창한다. 설 의원 역시 DJ 비서 출신의 정치인으로 그의 심중을 잘 헤아리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합을 이뤄내지 않으면 두 당의 공멸이라는 게 설 의원의 주장이다.
현 시점에서 양당 통합 또는 재결합의 최대 변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 복원 여부다. 두 사람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곧 민주당과 우리당이라는 정치적 공간과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공간의 동시 통합을 이뤄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연말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비공개리에 가졌던 ‘노-DJ 단독 회동’ 때 이미 통합과 관련한 얘기가 오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둘 사이에 통합의 시나리오와 관계 개선 프로그램이 교환됐다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는 형편이다. 즉 노 대통령이 DJ에게 남북관계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대북특사 수용’을 정중히 제안하고, DJ는 양쪽이 통합하는 것만이 민주화세력이 사는 길이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에 통합론의 강력한 신봉자가 있다는 사실도 이 같은 정황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난 그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운명적으로 통합과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도 통합론자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일이 있다. DJ의 일거수일투족에 정치권이 온통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