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보건의료·환경·부동산 분야 규제 철폐를 강조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입지 규제 개선은 투자활성화로 직결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합니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입지 규제의 전환을 지속 추진하고, 규제총량제 등 새로운 규제 방식도 선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2월 19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난 2월 24일 산업통상부, 중소기업청, 농림축산식품부를 끝으로 마무리 된 정부부처 신년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낸 말들이다. 분야는 각각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하나였다.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집권 2년차인 2014년 본격적으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살리기 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규제 철폐는 경제활성화, 일자리 창출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입에 달고 살아온 해묵은 주제.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언급한 규제 철폐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들렸다. 타 분야에 비해 공익성이 큰 탓에 보다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보건의료, 환경, 부동산 분야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그랬다.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 분야도 성역으로 남을 수 없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금기 영역’에까지 손을 대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도 보건의료 분야는 박 대통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기는 서비스산업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월 보건의료·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 등 5대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힐 때도 보건의료 분야가 1순위였다.
이런 관심은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당시 박 대통령은 “우리가 가진 세계적인 의료기술을 토대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해외 의료 수출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가 열린 자세로 협력하고 노력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다른 부처 업무보고 때에도 “스마트 의료라든가, 다양한 디지털 환경을 이용해 굉장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리형 의료 자법인 설치, 원격 의료, 메디텔(의료관광호텔) 허용 등 기존 보건의료계 질서를 크게 흔들어 놓을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환경 분야에 대해서는 규제 개혁을 넘어 아예 발상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발전된 환경기술을 적극 활용해 환경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글로벌 기업들도 환경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신산업, 신시장, 신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면서 “환경 분야에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 굉장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9일 환경부, 국토해양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 모습.
부동산 분야 규제 개혁은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도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국토부가 보고한 ‘입지규제 최소지구’는 인구와 산업이 모여 있는 도시 내에서 입지 규제를 대폭 완화해 기업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 개혁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도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토부나 지방자치단체, 도시계획운영위원회 등이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을 하게 되면 규제 완화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입지규제 최소지구’는 싱가포르의 화이트존, 일본의 롯본기힐스 등을 모델로 한 것으로, 구도심의 버스터미널과 역사 등 도시 주요시설과 주변 지역, 도시재생사업과 연계 가능한 도심의 쇠퇴한 주거지역 등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켜 재생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용적률과 층수완화 등 획기적인 규제 완화로 인해 주거, 상업, 문화, 체육시설 등 복합 기능을 갖춘 지역으로의 도시재생이 가능해진다.
박 대통령이 신년 업무보고에서 이들 보건의료, 환경, 부동산 분야의 규제 철폐를 유독 강조한 것은 상당한 모험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공익적 측면이 유달리 더 강조돼 온 분야이기에 규제 철폐 시도가 강한 반발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 규제 철폐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민심 이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보건의료 규제 철폐 시도를 의료민영화로 규정, 원천적으로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게 단적인 예다.
환경 분야도 막상 규제 철폐가 본격화되면 환경단체 및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부동산 분야는 자칫 규제를 잘못 풀었다간 부동산 가격 폭등과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도 부동산 정책 실패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이들 분야에 공을 기울이는 이유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 특히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여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또 규제 철폐로 인한 투자 유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창조경제 활성화처럼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 관계자는 “규제 철폐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한번 물면 살점이 뜯길 때까지 놓지 않는 ‘진도개 정신’을 주문한 데서 확인됐다”며 “정책을 치밀하게 준비해야겠지만 부작용을 먼저 생각해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대통령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