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과연 주군인 노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을까? 최도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지난해 10월14일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 ||
최씨의 이 같은 진술은 국민들에게도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동안 장수천 사건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지만 검찰이 최초로 노 대통령의 ‘혐의’를 공식 확인해준 셈이기 때문. 이 일로 노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도덕성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노 대통령의 ‘집사’로까지 불렸던 최씨는 왜 ‘주군’을 보호하지 않고 ‘터부’의 벽을 깬 것일까.
일각에서는 최씨가 노 대통령이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차버리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그런 폭탄발언을 했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을 자신에게 유리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검찰에 일부를 흘려 놓고 반응을 떠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자신만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노 대통령측에 보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였던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과연 ‘주군’의 등에 칼을 꽂을 것인가. ‘최도술 미스터리’를 따라가 봤다.
지난해 10월15일 최도술씨는 대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서울구치소로 향하기 전 알 듯 모를 듯한 야릇한 미소를 흘린 뒤 검찰 차량에 올라탔다. 당시 최씨의 ‘회색’ 미소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인지를 놓고 구구한 추측이 오고 갔다. 그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지금 어쩌면 그 어렴풋한 해답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최씨의 구속 언저리로 되돌려보자.
<일요신문>은 최씨가 구속된 뒤 ‘노무현 하야 최악의 시나리오’(597호 10월26일자)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때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첫 번째 악재로 지적한 것이 바로 최도술씨의 ‘입’이었다.
노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로 불린 인물이라면 검찰이 어떤 죄목을 들이대더라도 장세동·박지원씨의 경우처럼 순순히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최씨는 검찰의 구속 사유 중 개인비리 부분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최씨가 자신의 전격 구속 결정에 대해 청와대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만약 나에게 모든 책임의 화살이 돌아온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청와대에 보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약 석 달이 지나갔다. 최씨가 비록 노 대통령을 하야시킬 정도의 메가톤급 진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 진술을 통해 노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씨는 왜 자신의 주군에게 칼을 들이댄 것일까.
먼저 최씨의 검찰 진술을 살펴보자. 검찰은 지난 12월29일 노 대통령 측근 비리 발표 때 “노무현 대통령이 장수천 빚 변제를 위해 2002년 8월 지방선거를 치르고 부산 선대위에서 보관해오던 잔금 2억5천만원을 선봉술씨에게 주라고 최도술씨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연루’ 사실을 믿지 못한 기자들의 연이은 질문에 “최도술씨가 그렇게 진술하고 있다”며 최씨의 진술을 기정사실화했다.
난처해진 청와대는 그날 바로 대응에 나섰다. 윤태영 대변인은 “부산선대위 자금을 특정해 빚을 갚으라고 한 것은 아니고 빚을 변제하라는 취지의 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과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던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변명’을 했던 것을 볼 때 사안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검찰의 발표가 있자 열린우리당의 노 대통령 측근들은 매우 격앙돼 있었다. 최씨가 선거 과정에서 공금을 유용한 의혹이 있는데 오히려 노 대통령이 그 덤터기를 쓰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선거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던 열린우리당 A씨의 증언을 토대로 왜 최씨가 ‘벼랑 끝 전술’을 택했는지 짚어보자.
▲ 지난해 10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뇌물수수 관련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
만약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청와대는 적극적으로 대통령의 ‘혐의’를 변호하지 않는 것일까. A씨는 이에 대해 “나도 왜 대통령이 그렇게 입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최씨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그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씨가 폭탄 진술을 한 배경을 두고 A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최씨는 노 대통령 집의 ‘살림’을 10년 이상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SK 비자금 사건이 자신의 목을 죄어오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이 ‘영원한 집사’인 자신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너무 탈탈 털고 나오니까 최씨도 당황하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저렇게 대통령을 물고늘어지면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어서 자기 구명운동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물귀신 작전 아니겠나.”
A씨는 최씨가 지난 10월 중순 자신의 구속을 전후해 여러 차례 청와대에 SOS를 보냈지만 노 대통령이 끝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자신이 구속되자 집사를 외면한 주군에 대한 배신감 등으로 검찰에서 폭탄 진술을 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최씨의 이런 폭탄 진술을 두고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살길을 모색중인 최씨가 검찰에 슬쩍 몇 가지 사실을 흘려 노 대통령의 대응 수위를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대검의 한 수사관계자는 이에 대해 “측근들이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보스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씨는 노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최씨가 결코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검찰 쪽에 한 가지를 슬쩍 흘려서 노 대통령측이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떠봤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의 성격상 모두 털어놓자고 하면 최씨 또한 더욱 궁지에 몰릴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올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검을 출입하는 M기자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일단 최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 파문은 최씨가 기획한 고도의 작전일 수도 있다. 최씨가 더 큰 비밀을 쥐고 있는데 이번에는 맛보기만 보여준 것이고 상황이 악화되면 더 ‘위험한’ 폭탄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메시지로 흘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한편 기자는 앞서의 A씨가 주장한 최씨 연루 각종 의혹에 대해 최씨 변호인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여러 차례 메모를 남겼지만 최씨의 변호사는 일체의 응답이 없어 최씨의 반론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씨와 오랜 친분이 있는 K씨를 통해 최씨의 주장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었다.
K씨는 지난 지방선거 때 최씨와 선대위에서 같이 활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최씨를 곁에서 지켜본 친구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 말에 따르면 K씨가 최근 최씨를 면회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면회를 하면서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크게 울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신들의 신세가 불쌍하다며 서로 잡고 ‘억울한’ 심정으로 눈물을 나누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K씨는 이런 얘기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K씨는 먼저 노 대통령 측근들과 언론이 최씨에게 개인비리 혐의를 덮어 씌워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다.
“평소 내가 본 최씨는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금고지기의 성격상 선거자금을 쓸 만한 곳에 썼을 것이다. 최씨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의혹의 진실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 최씨는 출세의 지름길이 있어도 마다하고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그가 다 해먹었다고 비난한다면 정말 잘못된 시각이다.”
K씨는 특히 “최씨의 횡령 등 혐의에 대한 속단은 이르다”며 “재판을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분위기로는 최씨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재판 과정에서 또 한번 노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릴 만한 폭탄 발언을 할 가능성도 엿보였다. 물론 그 이전에 ‘극적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이런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K씨는 마지막으로 “최씨는 노 대통령이 정말 가장 어려웠을 때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통령의 곁을 지킨 사람이다. 그런 과정들을 모두 무시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믿고 살아갈 수 있겠나”라고 나직이 읊조렸다. 과연 최도술씨는 주군에 버림받은 희생양일까, 아니면 주군을 배신한 가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