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졸업 뒤 조직문화에 길들여지다 보면 개인의 자유는 구속되기 마련이다.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대학생들은 그래서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사회인이 되면 자연히 경제적 이유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지만 대학생은 꼭 그렇지 않다. 친구든 애인이든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진다. 어떻게 보면 대학생들이 한국 사회 성문화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여대생들의 위치는 좀 더 특별하다. 남자 대학생들이 대부분 군대를 경험하면서 여자에 대한 눈을 뜨는 반면, 여대생들은 시대 분위기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성의식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여대생들에게 도발적인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이를 통해 ‘요즘 여대생들이 다 이렇다’라는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 ‘요즘 여대생들은 이런 생각도 한다’라는 개인의 다양한 성의식에 초점을 맞춰 설문을 진행해보았다.
[특별취재팀]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고혁주 프리랜서
“첫 경험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였나요.”
설문지의 시작부터 공격적이고 직설적이라 기획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에둘러 표현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별로 없다고 판단한 취재진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대신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답변자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한 채 설문이 이뤄졌지만 전반적으로 대답이 구체적이진 않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워낙 민감한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 그런지 단답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어떤 질문이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짧지만 명쾌한 답변이 쓰여 있었으며 일부 예상 밖의 과감한 대답도 눈에 띄었다.
“대학교 1학년 남자친구와 모텔에서.”
첫 경험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여대생들은 첫 경험의 상대는 사귀던 남자친구였으며 장소는 모텔(54%)이나 자취방(28%)이었다. 시기는 1학년(57%), 2학년(14%), 3학년(9%), 4학년(3%)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여대생들은 대체로 입학과 동시에 첫 경험을 치른 경우가 많았다. 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첫 경험을 치른 경우(4%)도 있었고, 애인이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오빠,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과 첫 경험을 한 사례도 있었다(2%).
미성년자일 때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진 여대생들도 18%에 달했다. “15살 때 동네 오빠랑 만화방에서” “중3 교실에서 남자친구와” “중3 남자친구와 건물 지하 계단에서” “고2 유흥가 DVD방에서” “고3 때 교생선생님과 실습실에서” 등 장소와 상대가 다양했다. 대학 교육실습생과 첫 경험을 했다는 한 여대생은 “주변에도 교생과 첫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 고등학생이면 나이차가 얼마 안 나서 거부감이 없다. 관계 후 연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처음 성관계를 갖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선 ‘3달 이내(27%)’라는 답변이 많았으나 제각기 답이 달라 절대적인 비교를 하긴 어려웠다. 사귄 지 하루 만에 잠자리를 했다는 사람(6%), 일주일 이내(8%), 한 달 이내(28%), 1년 이내(9%), 2년 이내(2%)와 사람마다 다르다는 답변도 많았고(10%) 관계를 맺고 연인이 됐다는 여대생도 1명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은 설문지에 ‘3달 이내’라는 예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답변은 ‘100일’이라고 쓴 것이 많았다는 점이다. 인터뷰에 응한 여대생들에게 이에 대해 물었더니 “남자나 여자나 100일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지켜주고, 지켜야 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100일 기념일이 고비다. 암묵적으로 그때 첫 경험을 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성관계를 요구하는 쪽은 어디냐’고 묻자 예상대로 남자친구(72%)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답변(8%)도 적지 않았으며 “분위기에 따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걷다 지치면 모텔로” “말 안 해도 데이트 마지막 코스는 모텔” 등 성관계가 코스가 된 경우도 있었다.
장소에 대한 질문에는 톡톡 튀는 답변들이 많았다. 주로 모텔(58%)과 자취방(28%)에서 관계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특이했던 곳을 물었더니 온갖 장소들이 줄줄이 나왔다. 기숙사, 카페, 강의실, 동아리방, 건물 화장실, 욕실, 자동차, 도서관, 아파트 계단이나 옥상, 동물원, 병원, 초등학교 벤치 등 ‘필’만 받으면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개중에는 “사람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무도 없는 수영장 안 체온 유지실” “한 여름 해운대 바다 안”과 같은 기상천외한 답변도 있었다.
남자친구와 성관계 이후 연인관계가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설문에 앞서 성관계 여부가 연인사이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더니 “성관계를 하고 나면 남자친구의 마음이 식을 것 같다”고 말하는 여대생들이 많았는데 실제 결과는 뭐라고 딱 부러지게 결론내기 어려웠다. 성관계 직후 이별한 사람도 있었으며 3개월 이내 결별(9%), 1년 이내(27%), 2년 이내(1%), 상황마다 다르다(28%) 등의 답변이 고르게 집계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남자친구와 이미 성관계를 맺고 여전히 연인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여대생도 45%에 달했는데 그들에게 성관계 여부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었더니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잠자리 이후 관계 변화가 있었던 것은 남자친구보다는 원나잇이나 ‘썸남(연인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로 서로에 호감이 있는 상태)’ 정도다” “아무 상관 없는 것 같다” “더 사랑하게 됐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있는 반면 “과거 남자친구들을 보면 성관계 이후 나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았다” “약간 소원해진 것 같다” 등 부정적인 대답도 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성관계에 관한 문제가 이별의 원인이 된 적도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85%의 여대생은 이별의 원인이 된 적이 없다고 했으나 나머지 15%는 다툼의 원인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헤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한 가지 특징은 헤어짐이 원인이 됐다고 답한 16명의 여대생들의 이유가 모두 달랐다는 것이다.
넓게 보면 ‘스킬’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강압적이다’ ‘물건이 너무 짧다(유명 과자 치XX에 비유)’ ‘토끼(조루)다’ ‘지루하다’ ‘서투르다’ 등 각양각색의 원인이 총 출동했으며 남자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 잠자리 문제로 고민이 있다는 한 여대생은 “처음엔 만날 때마다 관계를 맺자고 해서 헤어질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성관계) 횟수가 줄어들어 내가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남자가 피임에 대한 생각은 없고 욕구만 앞서서’ ‘첫 경험이었는데 내가 너무 능숙하게 하는 바람에 오해 받아서’ ‘때려 달라는 등 성적취향이 안 맞아서’ ‘다른 남자와 잔 게 들켜서’ 등 상상 이상의 답변이 줄줄이 이어졌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