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4대그룹의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다.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연합뉴스
가장 아슬아슬한 절벽에 선 곳은 재계 3위 SK그룹이다. 지난 2월 27일 대법원에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의 유죄가 확정돼 오너의 ‘장기 부재’가 현실이 됐다. SK그룹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에도 분식회계 혐의로 8개월간 구속됐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간의 수감기간을 빼도 향후 3년간 경영공백이 불가피하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셈이다.
지난해 1월 31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된 최 회장은 앞으로 사면, 형집행정지, 가석방 등의 변수가 없는 한 오는 2017년 1월 말까지 복역해야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각 계열사가 자율경영을 하면서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가 그룹 차원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오너의 결정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와 해외 사업은 당분간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 등 내수에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에너지와 반도체 중심의 수출주도형으로 전환하려던 SK의 중장기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자원개발 등 해외 사업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사업을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 브라질 원유 광구를 머스크에 팔고 받은 24억 달러(약 2조 5680억 원)로 신규 자원개발을 추진해왔으나 현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종결정권자의 부재 속에 막대한 투자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부터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4’가 그 진원지다. 신제품을 통해 모바일 업계 1위의 저력을 과시하려 했으나, 그 이면을 따져보면 삼성전자가 잠재적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자리였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타이젠 테스트 단말기.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프폰 시장에 대비해 추진 중인 ‘탈스마트폰 시대’ 전략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내부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애플과의 특허 소송과 관련한 특허협상에 나섰다가 실패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최악의 경우, 삼성은 1조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카피 캣(모방꾼)’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 등 신수종사업의 투자와 인력양성에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미래산업형으로 체질개선이 가능할지가 올해 삼성전자의 행보에 달려있는 것이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56만 대의 글로벌 생산·판매 실적으로 성장세를 보였지만, 최근 품질평가에선 ‘역주행’을 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2월 초에 발표한 자동차 브랜드 인지도 평가에서 현대차는 지난해보다 4계단 하락한 19위에 그쳤다. 도요타(1위) 혼다(3위) 등 일본차 경쟁 업체와 대조적인 결과다. 또한 지난 13일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발표한 차량 내구품질 조사에선 현대차의 평가점수가 2년 연속 떨어져 전체 31개 브랜드 가운데 27위에 그쳤다. 정몽구 회장이 강조해온 ‘품질경영’과는 정반대로 ‘품질위기’가 형성돼 있다.
판매도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는 2008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고, 올 1월까지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가 집계한 2013년 브랜드별 유럽연합(EU) 27개국 판매 실적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년보다 2.2% 감소한 40만 8000대를 팔았고, 점유율은 3.5%에서 3.4%로 0.1%포인트 떨어졌다. 1월 판매량도 3만 대에 그쳐 전년 동기보다 5.9% 줄었다. 급기야 이 같은 위기감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미국 생산공장과 판매법인의 현장 점검차 지난 18일 출국했다.
여기에는 엔저에 따라 일본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측면이 있지만, 현대차의 내부 조직문화의 문제로도 연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계열사들의 부품을 써온 만큼 변화와 혁신이 적었다”면서 “판매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담당 임원들을 바로 교체하는 임기응변식의 기업 문화가 조직의 활력과 혁신적 품질개선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LG그룹도 실적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난 연말부터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던 구본무 LG 회장이 다시 혁신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2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혁신한마당’에서 “기존에 성공했던 방법을 고집하거나 현재 일하는 방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고객의 작은 불편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섬세함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박웅채 언론인